마름아, 국민은 소작인이 아니라 지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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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름아, 국민은 소작인이 아니라 지주다
  • 한북신문
  • 승인 2024.04.3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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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주 논설위원·문화커뮤니케이션즈연구원(유) 대표이사
신희주 논설위원·문화커뮤니케이션즈연구원(유) 대표이사

‘마름’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조선시대부터 지주가 소작인을 직접 관리하지 않고 간접적으로 관리할 때 일정한 대리 감독인을 두는데 이들을 마름이라고 불렀다.

지주로부터 소작지의 관리를 위임받은 마름은 현지에서 소작인을 관리하고 추수기의 작황을 조사하고 소작료를 거두어 지주에게 상납한다. 그리고 우리가 문학이나 영상에서 익히 봤던 잔학한 캐릭터로 종종 등장하는 그 모습은 그들이 주어진 권한을 넘어 전횡을 일삼을 때 목격되는 폐해였다.

22대 총선의 결과가 나왔다. 선거전부터 정권심판 혹은 탄핵방어 등의 레토릭이 등장했다. 몇몇 지역이 서울시에 편입이 될 거라는 포퓰리즘적 공약, 대통령의 1000조 민생투어는 다분히 선거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어서 공직선거법에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위반을 살피게 된다. 그럼에도 선거결과는 범 야권의 압승으로 보도된다. 물론 공천확정소식을 듣고서 선거 전에 당선축하파티를 했던 후보가 이번에도 아랑곳없이 당선이 되는 사례가 있었다. 전략공천이라 명명할 수도 없는 보은(報恩)성 ‘사천’ 인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꽂기만 하면 당선되는 지역구’라고 불리는 곳에서 당선되었다.

이는 유권자를 ‘단순히 표를 찍는 자’로 인식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것으로 국민을 마름이 ‘관리’해야 할 ‘힘없는 무지렁이’ 소작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근대 이후 민주주의는 개인의 기본권 보장을 중심으로 보편적인 참정권의 확대와 대의제민주주의가 정착되는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다수결 원칙에 따른 주기적인 선거와 정당정치로 정치체제로써 정착된 대의제민주주의를 보완해 주권자인 시민이 배제되지 않도록 국민투표, 주민 발안,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시민참여 등 시민의식에 기반한 참여민주주의 역시 함께 확대되고 있다.

시민의식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반드시 지켜야 할 권리와 의무에 대한 자각과 인식’이다. 공동체의식, 민주시민의식, 참여의식, 비판의식, 준법의식을 포함한다. 그리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은 정치한다.

민주주의가 절차적으로만 발전되면, 유권자들은 정치현안에서 비전문가로 소외되고 소원해져, 정치에 무관심해지며 기득권의 편향으로 정치혐오가 증가한다. 유권자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쉽게 동원되어 ‘표 찍어주는 기계’로 전락하고 사회 내 양극화는 더욱 심화된다. 여기서 우리가 실질적 민주주의도 구현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일이다. 즉 형식적 제도를 넘어 실제로 국민의 권리와 의사가 정치에 반영되는 공정한 선거 외에도 정치적 자유, 표현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 기본권의 실질적 가치를 지향하고 단순한 다수결이 아닌 소수자와 약자의 목소리도 존중되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가치관을 존중하고 상호 간 타협하는 다원주의와 관용정신을 바탕으로 한, 민주적 가치를 내재화한 생활 민주주의의 정치적 표현으로써 시민의 정치를 하고 있는가? 소작인이 아닌 지주로서 실행하고 있는가?

이번 선거에서 인상적인 몇몇 현상을 본다. ‘응징투어’마다 보인 군중의 환호, 50여분 만에 200억이 모금된 조국펀드, 후보의 상향식 국민참여경선에 따른 시스템 공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따른 연합비례정당창당, 67%에 달하는 투표율, ‘대파’ 밈, 정의당의 붕괴 등은 지금까지의 정치참여행태와는 또 다른 변모다. 비록 정치행위자로서 개인은 작은 단위이나 개인이 정치과정을 이해하고 정치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 인식하는 그래서 정부나 정치체제가 시민들의 요구에 반응하고 있음을 인식하는 정도가 높음을 본다.

능동적으로 ‘정치적 효능감’을 만끽하기 위한 다양한 방식과 다원적 연대와 선택적 기여 혹은 참여가 상호 역동적으로 국민의 행동으로 어우러져 나타났고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임을, 마름을 부리는 지주임을 일면 보여주는 선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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