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치기 문화와 정치인
상태바
당일치기 문화와 정치인
  • 관리자
  • 승인 2010.11.19 09: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기원 논설위원

당일치기라는 말이 있다.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이 꾸준히 공부하기 보다는 시험 전날 밤샘 공부해서 점수를 받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벼락치기 공부라고도 한다. 많은 학생들이 이러한 공부 방식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시험 때만 되면 바짝 긴장해서 시험만 잘 보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많다. 그리고 그 점수가 자신의 진로를 결정해 주는 중요한 기준표가 된다. 이러한 생각이 편만하다 보니, 이렇게 공부하며 자란 어른들도 모든 일을 닥쳐서 하는 수동형 인간으로 형성되고 말았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미리 준비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보다는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서야 고민하고 임시변통으로라도 빨리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게 때문에 나오는 현상은 언제나 불량과 전시행정 그리고 후임자나 다음 세대들에게로 고스란히 이어지는 부담이다. 아무도 미래를 생각하고 장기적인 전망을 제시하지 않고 지금 당장의 현재만을 바라보고 처방을 내린다. 오늘 우리 문화의 현주소라고도 할 수 있다.

정당만 해도 그렇다. 한국에 정당이 있는가? 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없다고 해야 마땅하다. 살면서 들어보는 정당 이름만 해도 너무 많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선거 때마다 정당이름이 바뀌거나 선거를 위한 정당이 급조되기도 한다. 선거 때는 사실 정치가들이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이합집산(離合集散)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꾸준한 자신의 정치철학과 명분을 가진 사람도 보기 힘들뿐더러,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 정견과 정책을 발견하기도 어렵다. 갑자기 엄청난 공약들을 내세워 금방이라도 잘 될 것처럼 과장해서 우선 당선이 되고 보자는 식이다. 확실한 자신의 정치철학을 가지고 그것을 실현하려는 정치가가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시민들은 정치가들의 당일치기 약속에 현혹되어 당선시켜 놓고 그들이 실제로 그것을 실천하는지 제대로 감시하지도 않는다. 이런 구조에서는 대한민국 정치가 발전할 수 없다. 구조와 규칙을 바꾸어야 한다. 절대로 당일치기 한 사람이 시험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시험문제를 내야한다. 그렇다면 어떤 시험문제를 내야할까? 정치가가 되기 위한 시험문제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어야 한다.

첫째로, 정치가가 되려면 세금이나 국가에서 시행하는 모든 정책을 성실하게 따른 사람이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들을 검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서류 제시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검토하는 전문가들이 꾸려져야 한다. 이 전문가들이 심사를 거쳐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 입후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니까 선거 전에 이미 입후보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자료를 제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투기의혹이나 탈세나 병역기피나 기타 등등 검증절차 기준은 많이 있을 것이다. 스스로 국가의 법을 어기면서 법의 파수꾼이 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둘째로, 정치가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사회 봉사활동의 시간이 많아야 한다. 국민을 위하는 사람은 정치가로 입후보하기 전부터 정치가가 될 수 있는 인격적인 자질을 보여주어야 한다. 자신이 살던 고장이든 주변 지역이든 그 지역민들이 인정할 수 있는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한 경력이 확실히 증명되어야 한다. 이 활동이 개인적으로 돈을 벌기 위한 활동이어서는 안 된다. 사회 봉사활동 경력에 대한 시간수의 기준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정치가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오래전부터 준비하게 될 것이다. 시민들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도 없고, 그런 마음의 준비도 안 되어 있으면서 어느 날 갑자기 납작 엎드려서 겸손한 척하는 것은 그야말로 쇼(보여주기)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는 선거 때만 반짝 당일치기쇼하는 정치인이 없어져야 한다.

세 번째로 정책 포럼을 열어서 정치 경제 전문가들과 시민들에 의해서 1차 검증을 거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스스로 입안한 정책을 전문가와 시민들 앞에서 발표하도록 하여 질문을 받고 토론을 하게 함으로써 정책의 타당성과 실현성 여부를 검토하도록 해야 한다. 현실성이 없거나 위법인 공약을 남발해서 당선되고 나서는 위법성 때문에 못한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엄청난 낭비요 비효율이다. 정책을 바꾸거나 수정하는 문제도 처음부터 그 실현 가능성이 검토되고 일정 정도의 공감이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아주 다르다. 이미 1차 당선된 적이 있는 사람은 그것의 정책의 실현 여부가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는 인물이 있어서도 안 되고,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정당이 있을 수도 없어야 한다. 정치는 당일치기 시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도 안 된 사람이 어느 날 치국(治國)을 하겠다고 하거나 평천하(平天下) 하겠다고 하면 안 되지 않겠는가? 정치의 지형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스스로 준비하고 또 준비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정치가가 될 수 있도록 하는 풍토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정치가를 존경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백년 앞을 내다보는 정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