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산(恒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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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산(恒産)
  • 홍정적
  • 승인 2014.02.1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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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한북대 평생교육원 교무부장



우리 역사가 배출한 가장 걸출한 서예가이며 불세출의 금석(金石)학자였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는 매우 불우한 정치가이기도 하였다.

그는 조선시대 후기를 대표하는 정치 명문 경주 김씨 집안에서 그것도 왕실과 친연(親緣)을 맺은 부마(駙馬)의 자손으로 태어나 34세에 과거에 합격하여 순풍에 돛 단 듯 순조로운 관직생활을 시작하였고 중국에 찾아가 당시 중국의 최대 석학이었던 옹방강(翁方綱, 1733~1818), 완원(阮元, 1765~1848) 등과 교유하면서 그들로부터 조선 최고의 지식인으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불시에 정치적 역풍을 맞아 그는 제주에 유배되어 9년의 긴 세월을 울분 속에 살아야 했고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다시 북청으로 유배되는 등 고난의 역정을 겪어야 했다

그의 삶은 스산하고 쓸쓸한 유랑의 삶이었고 고뇌와 번민의 나날이기도 하였다.
예산 ‘추사 고택(古宅)’을 찾을 때마다 나는 고택 사랑채 기둥에 달린 주련(柱聯)의 한 구절에 목이 메이곤 한다.

“가장 맛있는 음식은 아내가 차려주는 집 밥이요, 가장 고귀한 모임은 한 가족이 단란히 둘러앉는 것이다! (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

기나긴 유랑의 끝에서 그가 견딘 고독과 그리움의 끝은 결국 단란한 가정의 소박함 이었던 것이다 '가족들이 오순도순 둘러 앉아 나누는 소박한 밥상', 일세를 풍미한 정치, 예술, 외교, 학문의 대가가 그 먼 풍랑을 돌아와 정착할 곳은 결국 이 작고 소박한 행복이었던 것이다.

항산(恒産)이어야 비로소 항심(恒心)이다! 맹자(孟子)의 이 말의 의미는 ‘백성으로 말하자면 안정된 생업이 없으면 안정된 마음도 없는 법입니다’라는 뜻이다.

결국 정치도 예술도, 학문도 그 인과는 결국 항산(恒産)에서 비롯되어 항산에 종착된다 가족들과 둘러 앉아 나누는 한 끼의 따뜻한 밥상이야 말로 최고의 가치이며 목표가 아닐까?

2014년 이제 새로이 한해를 시작하는 이 나라 대한민국의 대통령과 야당의 지도자들, 그리고 이 겨레를 이끄는 모든 지도자들이 가슴에 새겨 명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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