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9일, 당신의 힘을 보여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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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19일, 당신의 힘을 보여야 할 때!
  • 신희주
  • 승인 2012.12.17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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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주 본지논설위원

어느 직장인이 ‘모처럼 이번에는 투표를 해볼까요’하고 말한다. 그 말하는 투가 꼭 누군가가 부탁을 해서 ‘투표를 해주는 것’ 같다. 지금까지 ‘골치 아프고 아수라장 같은 정치에 나 같이 선량하고 순결한 사람은 관심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어투를 바탕에 깔고 자신이 정치에 무관심함을 아주 당당하게 생각한다.

물론 대통령 하나 뽑는다고 세상이, 내 삶에 어떤 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음을 알고 있다. 세상은 우리 개인 하나하나를 통해 변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변화의 방향을 결정하는 키를 잡은 것은 대통령으로 불리는 리더다.

리더의 가치와 철학에 따라 국민이 희망하는 목적지로 방향을 잡게 되고, 비록 자신의 임기 내에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하여 자신의 인기에 부합되지 않더라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원칙과 시스템을 만들게 된다.

적어도 국민 모두의 생각을 나누고 쌍방향 소통과 실행이 병행하는 기본적 합의는 만들 수 있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민주적 절차에 관한 전제. 민주주의 사회에서 아주 당연한 이 전제를 만드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아이러니인가? 안타깝게도 지금까지의 정치투쟁은 이것의 연장이었다.

어떤 이는 민주주의가 무지한 대중에 의한 ‘다수의 횡포’가 우려되니 소위 전문가로 불리는 엘리트들에 의한 정치가 더 유리하다고 말한다. 플라톤의 귀족정치를 떠올리게 하는데 여기서 결정적으로 간과한 점이 있다.

플라톤의 귀족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는 현실에서 존재가능성이 낮은 절대적인 것이다. 이상적인 도덕을 지닌 귀족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으로 교양 있는 다수의 상식을 묻게 된다.

얼마 전 드라마로 방영된 ‘추적자’에서 절대권력을 가졌던 회장의 대사가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소의 무게를 물으면 처음에는 오차가 크지만, 묻는 인원을 늘일수록 신기하게도 점점 근사치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물으면 물을수록 진리에 근접하게 되는데 이것은 곧 민주주의의 바탕이기도 하다.

아쉽게도 오늘날의 투표는 최악을 피하기 위한 최악을 선택하는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늘 만족스러운 정치적 결과를 얻어내지는 못한다. 우리의 목표는 최악을 피해가며 우리의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잃지 않는 것이며 다음 투표에서 또 최악을 피해갈 수 있는 장치들을 유지하고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투표하지 않으면 미래의 최악에 대해 면죄부를 받게 되는가? 기권은 현재의 최악을 받아들이며 앞으로 지속되어도 좋다는 ‘암묵적 동의’라는 정치적 행위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현재 프레임을 잡고 있는 권력들은 우민을 이끌어야 하는 통치자가 아닌 국민의 시한부 대리자에 불과하다. 국민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정보를 편집해 선별된 것만 알도록 하는 것은 이들의 권한에 속하지 않으며 민주주의가치를 해치는 이들의 월권을 그냥 두어서도 안 된다.

대한민국은 열려있는 모든 정보를 통해 국민이 생각하고 국민이 판단한다. 국민을 꼭두각시로 여기는 정치인을 가만두지 마라! 선거를 통해 국민의 힘, 당신의 힘을 보여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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