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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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절규
  • 이상구
  • 승인 2012.09.3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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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구 신흥대 무역정보학과교수


얼마 전 30년 가까운 직장생활을 끝으로 퇴직한 동창생 몇 명을 만났다. 오랜만에 동창생들을 만나 대포잔을 기울이다 한 친구의 하소연이 이어졌다.

“퇴직과 동시에 학력과 전직은 아무 소용이 없더라” 게다가 “연금은 아내가 관리하니 동창회비가 없어 동창회도 못 나간다”고 푸념을 했다. 그 말을 어어 받아 퇴직한 다른 동창 친구는 아침밥을 먹고 산에 갔다와서 차려준 점심을 먹고 쉬려고 하면 “며느리가 있으니 어디 친구라도 만나고 오라”고 한단다. 아마도 아들 내외와 같이 사는 모양이다.

하루 용돈 1만원으로 어디서 시간을 보내야 할 지가 고민이라고 한다. 술잔이 몇 번 돌고나서 한 친구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아내와 자식들을 위해 살아 왔는데 이제는 가정에서도 쓸데없는 인간 취급을 받는 것이 서럽다며 울음이 계속됐다.

술병은 잔에다 / 자기를 계속 따라주면서 / 속을 비워간다.
빈병은 아무렇게나 / 길거리나 / 쓰레기장에서 굴러다닌다.
바람이 세게 불던 날 밤 나는 / 문밖에서
아버지가 흐느끼는 소리를 들었다.
나가보니 / 마루 끝에 쪼그려 앉은 / 빈 소주병이었다.

공광규 시인의 ‘소주병’ 이라는 시다. 평생 돈 버는 기계로 살다 버려진 고철덩어리와 같이 변해버린 지금 50~60줄 아버지들의 공통된 절규인 듯하다. 가족을 위해 별보고 나가 별보고 들어오는 생활에 지쳐 빈껍데기만 남은 아버지들의 울부짖음과 서글픔에 나도 공감한다.

산업전사였던 아버지! 그들이 과연 알콩달콩하게 지낼 수 있었던 시간이 얼마나 있었을까! 설사 있었다고 한들 그 길이와 깊이가 얼마나 됐을 것인가. 과정은 무시하고 현실의 잣대로 가정을 팽개친 죄인으로, 힘없이, 떨어진 젖은 낙엽처럼 퇴직한 아버지는 ‘거실남’과 ‘삼식(三食)이‘로 전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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