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所有의 幸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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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所有의 幸福
  • 논설위원 홍경섭
  • 승인 2011.07.11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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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무엇 때문에 사느냐고 물으면 누구나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말할 것이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이나 눈 한 번 깜박이는 것도 불행해진다고 하면 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는 자살하는 사람들도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행복하기 때문에 죽음을 택하는 것은 아닐까.

오늘 보다는 내일이 더 나아지고 내일보다는 모레가 더욱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끝없이 행복을 찾는 나그네일지 모른다. 행복을 찾는 방법도 ‘산 넘어 행복이 있다기에’라는 것처럼.
무지개를 찾는 소년처럼 밖에서 찾아서는 아무리 찾아도 없을 것이다. 어떤 시인이 노래에서 “봄을 찾아 온 산천을 헤매고 돌아왔더니 뜰 앞 매화나무에 꽃이 피었더라.”라고 하듯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 즉 우리의 마음속에서
욕망(慾望)을 벗어던져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욕망을 버리는 때에 비로소 온 천지가 내 것이 되고, 바라는 것이 없어질 때 일체 것은 내 것이 된다. 그래서 무소유(無所有)가 중요한 것이다. 마음의 욕망이 없음이 무소유이기 때문이다.

옛날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재산?명예?처자 등의 세속적인 부(富)는 거의 갖춘 사람이 항상 심드렁하니 불행해 했다. 그리하여 어떤 도사에게 찾아가 하소연하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이의 속옷을 구해 입으시오.”라고 했다. 그래서 길을 떠났으나 불행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몇 년 헛걸음을 하다가 이구동성으로 소개해 준 사람을 찾았다.
그는 수행자였는데 “당신의 속옷은 나에게 행복을 주니 그 옷을 주십시오.”라고 하자 그 수행자는 껄껄 웃으며 누더기를 들추는데 속옷 없는 맨살뿐이었다.

명예(名譽)의 옷, 재물(財物)의 옷, 아집(我執)의 옷들이 겹겹이 쌓일 때마다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모두 벗어던지고 무소유가 될 때 가장 행복하다.

그렇다. 무소유는 텅 빈 충만이며 비어 있는 가운데 항상 가득한 것이다. “행복은 쌓음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비움으로 오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만족함을 아는 사람은 가난하고 천해도 즐겁고, 만족을 모르는 사람은 부하고 귀하여도 불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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