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有別의 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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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有別의 禮
  • 관리자
  • 승인 2011.02.28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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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學 홍 경 섭

부부는 모든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시발점이자 인륜의 근본으로서 매우 중요하다. 인간관계의 시원적 출발점이 남녀 부부이기 때문에 사실 에의 근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의 감정으로 말하면 남녀와 부부보다 더 친근한 것이 없어서, 예로부터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 한다. 무릇 부부의 ‘이별(離別)’은 당사자의 슬픔과 고통일 뿐만 아니라 인륜의 파탄을 의미하는데, 어찌하여 오직 부부간의 예를 ‘분별(分別)’에 두고 있는가? 가장 친근하고 막역하여 사이가 없는 사이이기 때문에 사이(間), 즉 분별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역설적인 것처럼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진리는 본디 양 극단이 서로 하나로 통하는 상대적이고 역설적인 측면이 있다. 우리 속언에도 흔히 말하기를, 부부간에는 촌수가 없다(無寸)고 한다. 여기에서 촌수가 없다는 말은 사이 없는 가장 가까운 사이라는 의미에서 감정상의 영촌(零寸)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본래 혈연적으로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남남 사이로서 또한 한번 헤어지면 남남으로 돌아선다는 의미에서 이치상의 무한촌(無限寸)을 동시에 뜻하는 중의적인 용어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흔한 말로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가 부부 사이인 것이다.

한편 남녀간의 사이없는 친근함은 본디 자연적인 감정(본능)을 근거로 한다. 감성적인 본능이라는 것은 원래 변화무상한 충동성을 지니는데다가 자칫 넘치기 쉬운 까닭에 단지 이 본능적인 감정에만 따른다면 부부 사이는 금수와 마찬가지로 결코 항상적인 안정성을 기할수 없게된다. 필연적으로 인간사회 전체도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지 못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이성과 도리에 근거한 분별(分別)로써 인간의 감정적인 친근함을 합리적으로 적절히 절제하고자 하는것이 바로 부부간의 기본적인 예절이다. 흔히 부부간의 인륜으로 ‘사랑’과 ‘존경’을 함께 드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사랑은 감정적인 친근함을 이르고, 존경은 이성적인 분별을 말한다.

예에 있어서 사랑보다도 존경을 강조하는 것은, 사랑은 자연적인 감정의 유출이기 때문에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교류되지만, 존경이란 친근한 감정에 가려 자칫 소홀시 되기쉽기 때문이다. 또한 존경이없는 사랑이란 그 자체도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까닭에 성인이 이를 염려하여 미리 예로써 가르치고 인도한 것이다.

남녀와 부부 사이를 기(氣)로써 말한다면 음양(陰陽)이 되는데, 전기(電氣)의 음양으로 비유하면 부부유별(夫婦有別)이 더욱 실감나게 명확해진다. 확실히 음전기와 양전기가 접촉하여 방전(放電)하여야만 빛과 열 그리고 힘과 같은 에너지를 발생시키듯이, 부부도 하나로 합하여야 비로소 새로운 생명을 창조할 수 있다. 그러나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음양의 전기가 필요한때 방전하여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필요하지않은 평소때에는 음극과 양극을 단절시켜 그 전기를 보존 축적해야 한다는 물리(物理)이다. 불필요한 때 음전기와 양전기가 접촉되는 것을 합선 또는 누전이라고 하는데, 이는 에너지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흔히 커다란 재앙의 불씨가된다. 이는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사리(事理)이다.

인간의 부부 사이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남녀의 합일(合一)은 새 생명의 창조로 종족을 보존하고 인류를 번식시키라고 부여된 조물주의 섭리이다. 그러나 부부가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여 창조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평소 늘 ‘분별’있는 관계를 잘 유지하여야 한다. ‘작은이별이 새로운 부부관계를 낳는다(小別生新婚).’는 속담은 바로 이러한 진리를 새삼 일깨워준다.

이러한 생명의 법칙을 벗어나고 위배하는 불필요하고 무분별한 접촉은 합선이나 누전과같이 생명에너지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재앙의 씨앗이 될뿐이다. 존경으로써 부부간의 분별을 강조하는 예는 바로 이러한 인류의 재앙을 예방하고자 하는 방파제인 것이다.

실로 남녀 간의 윤리도덕의 문란으로 야기되는 치유할 수 없는 각종 질병과 재앙이 얼마나 크고 무섭게 밀어닥치고 있는가! 이렇게 보면 옛사람들이 부부 상호간에도 마치 손님 접대하듯이 공경과 정중으로 대한것이 얼마나 훌륭한 정신과 깊은 까닭을담고 있는지 알수있다. 사회적으로 공인된 합법적인 부부관계도 실로 이와같이 공경으로써 엄연히 분별하거늘, 하물며 일반 남녀관계야 두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형수와 시아재 사이에도 직접 친히 물건을 주고받지 않으며, 남녀가 일곱 살만되면 한자리에 함께앉지 못한다는 옛날의 기본예절은 모두 그 합리적인 존재이유를 가지는 것이다. 꺼진 잿속에서 피어오르는 불씨보다도 더 무섭고 치열한 남녀간의 감정을 분별로써 절제하고 예방하기 위한것일 따름이다.

그런데 요즘은 부부 사이의 관계는 고사하고라도, 일반 남녀 사이에도 말씨나 행동, 심지어는 옷차림과 용모까지 남녀의 구별없이 중성화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오직 순간적인 향락과 유희만을 추구하여 윤리도덕과 예의규범은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장차 이 사회와 인류의 앞날은 어찌될 것인지 걱정이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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