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실에서 오는 서움함
상태바
분실에서 오는 서움함
  • 관리자
  • 승인 2011.02.27 23: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長谷 이 덕 근

잊어버린다(분실)는 것을 좋다할 사람은 없다. 값지고 귀중한 물건일 수록에 더욱 그러하다. 애지중지 아끼는 귀물에 대한 집착일까? 어떤 사람은 말하길 버릴수록 좋다고 하지만, 여기서 분실이란 것은 정신건강상 망각이 아니다. 물질적 분실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구할 수 있는 물건이라면 액땜이라 포기할 수도 있다. 되살 수 만 있다면 시장을 찾아 구매하면 되지만 그렇칠 않아 걱정이 태산 같다. 살수도 없고 재생산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번 없어지면 그것으로 영원히 없어는 경우의 이야기이다.

지금 내가 잊은 물건이란 컴퓨터에 쓴 글(수필)들이다. 워드로 쓴 글들을 몽땅 날라버렸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러니까 금년 들어서 한 번도 아닌 두 번째이다. 올 초승부터 2월 16일 까지 일기전량이 날랐고, 또 2월 18일부터 22일까지 글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17일분과 18일 일부는 지워지질 않았겠다. 없어진 분량이 A4용지 40여장이나 된다. 컴퓨터 전문가를 불러서라도 찾을 수 있다면 다행이나 찾지 못 할 경우, 그 글들은 영원히 잃는다는 두려움(?)이다. 일기라지만 일상적인 단순한 생활일기가 아니다. 주제를 정하여 쓴 일종의 수필이다. 나름대로 온 정성을 다한 내 혼이 들어있는 글들이다. 그래서 더더욱 아쉽고 서운했던 것이다. 그리 될 봐엔 차라리 만년필로 노트에다 썼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분실의 책임이 내게 있으니 누굴 탓하랴. 컴퓨터에 능숙치 못한 내 잘못이 분명하다. 컴퓨터상의 오류라기 보단 컴퓨터 사용상의 미숙에서 온 것이다. 그 실, 나는 컴맹(컴퓨터문맹)이라 할 정도로 컴퓨터 문맹에 가깝다. 컴퓨터를 정식으로 배우질 않았을 뿐만 아니라 배우려는 노력도 적극적질 못했다. 단지 독학으로 조금 알고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학원에서 정식으로 배우고 독학으로 컴퓨터를 습득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으나 마음뿐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게으름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의 고통을 자초했다 하겠다. 컴퓨터 공부에 개으른 것은 사실이나,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노안에 시력이 젊어서만 못하고 건망증과 기억력 쇠퇴(?)이다. 두뇌 활동이 왕성한 젊어서와 달라 기술 습득이 쉽질 않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배우고자하는 도전정신도 호기심도 젊어서만 못하다. 오히려 새로운 학문과 기술에 두려움이 앞선다. 주변에선 당신이라면 조끔만 노력하고 시간을 할애하면 컴퓨터정도는 큰 어려움 없이 잘할 것인데 왜 안하느냐면 안타가워 한다.

어쨌거나 40여편의 글을 날리고 말았다. 낙서하듯 쓴 글이 아니라 심혈을 기울려 쓴 글들이다. 인생관, 시대정신, 우국충정등 나의 철학과 정신이 답긴 수필 문이다.

그것도 나이 80대에 쓴 글이다. 늙으면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밝은 낮에도 눈을 비벼야하는 고통 속에서 심혈로 쓰여 진 수필들이다. 그래서 잊어버린 글에 대한 애착이 더더욱 클 수 박게 없다. 글이야 또 쓰면 되지만 잊어버린 글을 되찾기란 불가능하다. 한번 쓴 글은 재생이 불가하다. 서예가가 그렇듯이 수필가도 마찬가지다. 같은 글씨를 다시 쓸 수 있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다시 쓸 수 없다는 데 있다. 아쉽기 그지없다. 지금 내 마음은 잊은 글들을 찾아졌으면 하는 일념뿐이다. 제발 되찾게 되였으면 좋겠다. 그 심정은 작가나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구구한 사설이 필요 없다. 공들려 쓴 윈고지를 분실해 본 사람이면 이해 할 것이다. 그것도 자그만치 40여편 분량을 한 순간에 날렸겠다. 허망하기 그지없다. 내게는 천금을 주고도 살수 없는 보물이라서 허탈지경이다. 물론 수필 중에는 졸작도 있고 신변잡기에 불과한 글도 없지 않겠지만 잊었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이 너무나 크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