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물로 본 고조선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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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로 본 고조선 영토
  • 한북신문
  • 승인 2026.02.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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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규 논설위원·여행작가
김현규 논설위원·여행작가
김현규 논설위원·여행작가

필자는 2004년 발간한 e-book 첫 아시아 여행기 <내가 본 세계> 서문에서 요하유역 홍산문화 유적의 발굴로 인해 우리 고대문명에 깜짝 놀란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고조선, 부여, 고구려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의도를 알고 이에 대응할 것을 확실히 했다.

그런데 인터넷을 보니 우리 영토가 압록, 두만강을 넘은 적이 없었다는 등 글들이 올라있었는데 이는 우리의 고대문명과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그릇된 견해이다. 그래서 적봉 등 고구려, 고조선 유적지 답사에 나섰고 만주와 요서, 한반도에 거주해 신석기문명을 창조해온 동이족 즉 예맥족의 분포 지역과 고조선 단군왕검 이후 부여 고구려 초까지 2000년간 누락된 우리 역사를 복원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왔다.

세계 문명은 모두 강 하류와 바닷가 인근 지역에서 발생하였다. 반면 중국에서는 황하상류에서 앙소문화(채도)가 발생하였으니 하(BC 2070-1600), 은(1600-1122)나라는 황하 중, 하류를 일부 지배해 청동기를 사용하고 은허, 정주에 성벽을 축조하였다.

우리나라는 BC 7000년경에 만주와 요령 요서 한반도에 신석기인(빗살무늬토기)들이 농경생활을 하면서 차츰 농기구를 사용하고 강가와 바닷가에 정착해 살았다. 신석기 말기에는 구릉지대에 터를 잡아 거주했고 애니미즘, 토테미즘 등 종교와 청동기 문명이 발생하였다. 그 중 난하와 요하사이에 거주하던 동이족이 홍산문화(BC 4500-3000)를 이룩하였다.

1983년 적봉시 능원현 우하량에서 여신전터, 여신묘, 여신두상, 예맥족의 토템신앙인 곰과 새의 소조상, 적석총(옥 출토) 등이 발굴되었고 하가점 하층(BC 2400-1500)에서 소량의 비파형 동검과 청동장신구, 고구려 치(雉)구조의 석성이, 하가점 상층에선 (BC 1200-500) 비파형동검, 잔무늬 거울 등 청동기가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또한 산둥반도와 발해만 연안에서도 빗살무늬토기와 적석총, 비파형동검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이 지역이 당시 고조선 영토였음을 말해준다.

BC 2400년경에 환웅이 웅녀와 결혼하여 왕검을 낳았고 비왕으로 있던 단군왕검이 사납고 탐욕스런 예족(숙신, 말갈)과 어리석고 고집 센 맥족을 정복이 아닌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통치 이념으로 교화시켜 동이의 각 부족을 통합하여 고조선을 건국하였다.

고조선 초기 서쪽 영토가 발해만에서 산둥반도 지역까지였으므로 단군왕검이 태자부루를 파견해 도산에서 순의 우사공에게 오행치수의 법을 전할 수 있었고 기자는 석방 후 번조선 영토인 서화에 살다 산둥성 조현에 묻혔고 공자(BC6-5C)가 논어에서 군자국 동이의 나라에 살고 싶다고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들 동이족들은 전국시대(BC 403-221)와 진, 한 시기에 걸쳐 점차 만주와 한반도로 이주하였다. 그래서 요동요서의 비파형동검이 한반도 일부 지역에서 발굴되며 이는 후에 세형동검으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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