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없는 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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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 의사회
  • 한북신문
  • 승인 2024.03.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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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국경없는 의사회>의 설립은 국제적십자사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파스칼과 나는 적십자사가 아는 유일한 의사들이었습니다. 예멘에서 이들과 함께 일한 적이 있기 때문이죠. 적십자사는 우리에게 의사를 찾아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첫 번째 지원자가 베르나르 쿠시네(Bernard Kouchner) 였습니다. 당시 그는 저보다 훨씬 젊었어요. 이제 막 공부를 마치고 아직 논문도 끝내지 못한 상태였는데도 그는 비아프라로 가겠다고 선뜻 나섰습니다.”

막스 레카미에, 베르나르 쿠시네, 그리고 임상의 2명, 간호사 2명이 동행했다. 유혈이 난무하는 교전 지역에 내던져진 경험은 풋내기 의사들에게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이들은 빈번하게 나이지리아 무장군의 과녁이 되던 병원에서 전쟁 부상자들을 수술해야 했다.

그들의 기여가 알려지면서 이 일에 동참하려는 헌신적이고도 인도적인 의료인들이 대거 동참하였고 결국 1971년 12월22일 의사, 간호사, 그 외 스태프 등 300명의 지원자로 국경없는 의사회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다.

이후 국경없는의사회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 총 29개 사무소를 설치하고 3만여 명의 직원이 1억 명이 넘는 환자를 치료해 왔다. 2014년 한 해 동안 실시한 외래 진료만도 830만 건에 달한다.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과(Managua)에서 1972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1만 명~3만 명이 사망하였을 때 1974년, 온두라스에 몰아닥친 허리케인 피피(Fifi)가 큰 홍수를 초래하며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을 때 많은 의사들이 기꺼이 그 명예와 풍요와 지위를 내려놓고 총탄이 난무하고 학살과 죽음과 기아가 만연한 현장에서 죽음의 공포에 맞서며 의사로서의 숭고한 책임을 감당해 왔다.

이들은 왜 특권과 풍요, 지위를 내려놓고 흰 가운조차 입을 수 없고 의료장비가 절대적으로 모자라며 심지어는 자신의 생명조차 담보할 수 없는 험지로 달려가는 것일까?

그 이유를 설립자 베르나르 쿠시네는 이렇게 설명한다. “국경없는 의사회의 설립 이념은 단순합니다. ‘환자가 있는 곳으로 간다’입니다.” 성별 인종 종교 정치적 성향을 떠나 누구나 의료 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신념 그리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의료 지원이 국경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의사의 수가 절대로 모자라 곧 1만5000명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는 절박한 상황을 철저히 외면하고 의대입학 정원 확대를 반대한다는 국민이 전혀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로 병원과 환자를 버리고 길거리에 나가 시위에 몰두하고 있는 의사들은 그들이 의업을 허락받으면서 엄숙히 맹세한 그리고 그들의 진료실마다 액자에 넣어 걸어 둔 스스로의 맹세 “내가 어떠한 집에 들어가더라도 나는 병자의 이익을 위해 그들에게 갈 것”, “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게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수태된 때로부터 지상의 것으로 존중히 여기겠노라”는 그 맹세 앞에 이제라도 부끄러워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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