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큰헤이드호’를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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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큰헤이드호’를 기억하라
  • 한북신문
  • 승인 2024.01.31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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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비록 비문(非文)이기는 하여도 인류사회 전체에 적용되고 있는 이 가장 위대한 자기희생의 국제규범은 한 비극적인 사고와 이에 대처한 신사도적 헌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

1852년 2월25일 대영제국의 해군 수송선 버큰헤이드호는 남아프리카 지역으로 파송되는 군인과 그들의 가족 총 630명을 태우고 두 달이 넘는 항해 끝에 목적지인 케이프타운에 거의 도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배는 최종 목적지를 불과 63㎞ 남긴 지점에서 암초에 부딪혔고 이내 침몰하기 시작한다.

배에는 60명을 태울 수 있는 구명정 3척이 있었으므로 단지 180명을 구조할 수 있을 뿐이었다. 선장인 시드니 새튼 해군 대령은 전 병사를 갑판 위에 집합시킨 후 절반의 병력은 부녀자들을 구명정에 태워 바다에 내리고 나머지 병사들을 횃불을 켜서 갑판과 해상을 밝히도록 명령한다. 모든 구명함이 바다로 내려진 후 남은 460명의 병사들은 갑판에 정렬했다.

구명정에 옮겨 탄 부녀자들은 가라앉는 배 위에 정렬하여 의연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흐느껴 울었다. 죽음을 앞두고 갑판 위의 사병들은 서열식을 하는 것처럼 꼼짝하지 않았고 결국 버큰헤이드호는 파도에 휩쓸려 침몰하고 만다. 그날 오후 구조선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436명의 목숨이 수장된 뒤였다.

얼마 후 북아프리카 알제리 해안에서 1500명이 넘는 승객을 태운 영국 수송선 엠파이어 윈드러쉬호가 보일러가 폭발하는 사고로 침몰위기에 처한다. 선장이자 사령관인 스코트 대령은 역시 전 인원을 갑판에 집결시킨 후 일장 연설을 한다.

“우리는 지금부터 ‘버큰헤이드 연습’을 실시한다. 여자와 어린이를 우선적으로 구명보트에 실어라. 그 외의 사람들은 부동자세로 갑판에 집결하라.”

모든 구명보트가 내려지고 여자와 어린이, 환자들이 탑승을 완료할 때까지 단 한명의 남자도 움직이지 않았고 승무원이 구명보트에 자리가 약간 더 남는다고 보고하자 선장은 명령한다.

“탑승은 장례식 치르는 순서대로다. 나이 젊은 순서대로 태워라” 마침내 모든 구명정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 갑판에 남아 질서정연하게 부동자세로 서있던 남성들에게 선장은 최후의 명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탈출을 시작한다. 모두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쳐라. 단 절대로 구명보트 쪽으로 헤엄쳐서는 안 된다.” 4시간 뒤 주변에서 달려온 선박들이 승객들을 구조할 때까지 바다 한복판에서 천명이 넘는 성인남자들은 헤엄을 치며 견뎠고 그들이 모두 구조되는 그 순간까지 단 한명의 남성도 구명보트 쪽으로 헤엄치지 않았다.

어린이와 부녀자 먼저 자리가 남으면 젊은 순서대로 구조한다는 이 원칙은 인류가 구축한 가장 아름다운 규범이다. 자기 목숨을 버리는 절대 헌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피습당한 어느 정치인의 병원 이송과정이 문제가 되고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구조는 국가의전 서열이 아닌 위급한 순서대로”라는 이 평범하고 보편적인 질서가 무시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보편적인 질서가 이슈가 되는 나라를 우리는 ‘후진국’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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