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창공의 대가 울울히 엉켜 무거워지면 눈이나 비가 되어 지상으로 내려 대지를 적시고 대지의 습기가 열기에 증발하면 다시 하늘로 올라 구름으로 퍼지는 순환이 이루어지는데 그 순환을 통하여 만물이 생기를 얻고 그 순환으로부터 성장의 근본 동력을 얻으니 그 순환의 본질은 곧 물이며 물은 본질을 지켜 자연이 정해준 순리를 따라 흐르고 증발하고 내리고 모이며 생명을 키운다. 따라서 모든 문명은 강을 따라 발생하여 성장하였고 모든 생업은 결국 물을 얻고 그 물을 다스리는 데에서 성패가 갈렸다.
물은 본성을 따라 아래로 낮은 곳으로 흐를 뿐이니 바닥이 좁은 계곡에서는 급히 흐르고 너른 들에서는 천천히 가며 마른 날에는 땅 아래로 스며들어 식물의 뿌리를 적시지만 넘치면 흉폭해져서 땅을 깎고 범람하여 식물의 뿌리를 뽑게 된다. 따라서 예로부터 나라를 다스리는 자의 가장 기본 된 임무는 물을 다스리는 치수(治水)에 있었고 치수에 성공하는 것이 곧 다스림 성공의 척도가 되어 왔다
그러고 보니 치수, 정치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치(治)는 대개 ‘다스린다’라고 해석하지만 그 본래 의미는 ‘물(水)을 달랜다(台)’는 의미로 ‘흐르는 물의 방향을 함부로 바꾸려 하거나 물이 지닌 본성을 ’거스르지 말라‘는 경고성 의미를 함유한다. 같이 쓰이는 법(法)역시 ‘물(水)이 잘 흐르(去)’도록 만들라는 뜻이니 곧 법은 ‘자연스러움을 더 자연스럽게’ 돕는 장치여야 한다는 뜻이 된다.
대한민국은 법에 의하여 통치되는 법치국가이다. 이는 즉 우리나라의 행정을 담당하는 자들은 그 행위가 법(法)과 치(治)에 구애되어야 한다는 뜻이니 모든 일을 순리에 따라야 한다는 것으로 국가 권력은 자연법적 규범으로 통제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자연법에 따르면 법을 제정하는 입법권을 국회에 준 것은 국민이다. 태어나면서부터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아무에게도 양여할 수 없는 자연법적 권리의 일부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저들에게 일정 기간, 일정범위에 한정하여 위임해 준 것 뿐이니 그 입법 권력의 본질적 귀속은 국민에게 있다. 따라서 입법권을 위임받은 자들은 물 흐르듯, 물 달래듯 당연한 순리를 따라 심의하여 공동체에 유익한 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아무리 살펴도 이 순리안에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진영의 논리와 권력의 향방만을 좇아 오로지 패거리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심지어는 절차도 무시한 채 법을 함부로 만들고 있다. 한, 두 가지인가. 다수가 되었던 소수가 되었던 법 제정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으면 당연히 그 의견을 듣고 또 듣고 설득하고 소통하며 모두가 동의하는 최대한의 합일을 도모하는 것이 입법권자가 지녀야 할 기본자세 아닌가?
놀랍기는 이 법을 만들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심지어는 그렇게 거부하도록 유도하려 법 만들기를 강행한다는 소문도 들리는 판이다. 법이 흔들리면 기본이 흔들리고 공동체도 흔들린다. 그리고 결과에 대하여 반드시,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 것이 바로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