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무나 전희는 봉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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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무나 전희는 봉사가 아니다
  • 한북신문
  • 승인 2023.06.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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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성 해성산부인과 원장
박혜성 해성산부인과 원장
박혜성 해성산부인과 원장

 

애무나 전희를 하는 것이 상대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서 애무를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거나 상대에게 봉사라고 생각하면서 성적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그것은 버려야 할 편견이다.

전희를 통해 상대방을 흥분시키는 것이 상대를 위한 봉사가 아니라 애무를 하는 사람의 성적 쾌감과 만족도를 올리는 중요한 과정이다.

중년에 접어든 남자는 전희가 길어지면 발기가 수그러들까 걱정되어서 전희를 할 마음의 여유가 없고 여자의 입술과 가슴을 자극하는 척 하다가 얼른 삽입을 해 버린다.

이렇게 애무를 받지 못한 여자는 흥분이 덜 돼서 분비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데 남편이 삽입하려고 하니 아프기만 하다. 성감대를 자극하기 원하는 데 남편은 모른 체 한다. 부인이 성 관계를 거부하거나 아프다고 하면 윤활제를 쓰자고 한다. 가끔 용기내서 남편에게 전희를 요구하면 ‘너도 안 해주는데 내가 왜 해주냐’며 큰 소리를 치니 부인 또한 남편에게 애무해 주기가 싫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부부사이는 멀어지고 자존심 싸움을 하다가 서로 멀뚱멀뚱하게 지내게 된다.

‘남편은 자꾸 음경을 자극해달라는데 꼭 자극해야 발기가 되나? 예전에는 나만 봐도 발기가 됐는데 지금은 사랑이 식은 탓인가?’ 그렇게 부인이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남녀관계에서 바라만 봐도 흥분이 되서 후다닥 삽입성교가 가능한 것은 눈에 콩깍지가 씌었을 때나 가능한 얘기다.

정상적인 남녀의 성행위에서 남녀 동시에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남성보다 여성의 성 흥분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남성보다 여성을 자극하는 시간이 더 필요하고 그래서 아내를 먼저 자극해서 성적으로 흥분을 시키는 것이 이론상 맞다.

전희로 여성을 자극하여 흥분도를 올리면 여성의 질에 혈류량이 증가하여 남성이 발기를 하듯 전정이라 불리는 혈관주머니가 에어백처럼 부풀어서 남성의 음경을 감싸게 되고 이렇게 전정이 커지면 남녀성기의 밀착 면적이 높아지면서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자극의 강도를 올려서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즉 여자를 애무했는데 결국 남자도 즐거워지는 것이다.

반대로 남자를 애무하면 남자의 음경 발기 강직도는 증가하고 결국 남녀 성기의 밀착도가 증가해서 남녀모두 즐거울 수 있다. 즉 남자를 애무해도 결국 여자가 즐거워진다.

부부가 오래오래 즐거운 성생활을 하고 싶다면 애무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를 위한 배려가 나를 위한 배려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희는 상대방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상대방을 자극해서 나 자신의 즐거움을 올리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마치 자원봉사나 의료봉사로 인해 몸은 피곤하지만 자기 성찰도 되고 앞으로 열심히 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정신적 위로가 되는 것과 같다. 즉 봉사는 이타적인 행동이지만, 결국 가장 이기적인 행동이 될 수 있다.

애무나 전희도 그렇다. 이타적인 행동 같지만 결국 이기적인 행동이다. 배우자에게 봉사하는 것 같지만 결국 나의 즐거움과 나의 오르가슴에 도움이 된다. 즉 애무나 전희는 봉사가 아니다. 나의 연인을 위한 사랑이다. 나를 위한 사랑의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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