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문화와 노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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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문화와 노숙인
  • 한북신문
  • 승인 2023.06.14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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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식 의정부시 희망회복종합지원센터장 뇌과학박사.교육학박사
김충식 의정부시 희망회복종합지원센터장 뇌과학박사.교육학박사
김충식 의정부시 희망회복종합지원센터장 뇌과학박사.교육학박사

 

“올해 추석이 토요일이니까 꼭 오셔서 송편이랑 전이랑 잡채 등 추석 음식 함께 먹어요.” 정말 갈 곳이 없으니까 꼭 오겠다고 한다.

“음식은 다 있는데 대신 술은 없어요.” 잘 안다고 하면서 우스개 소리로 음복 얘기도 하고 다른 선물은 없냐고 한다.

이제는 정말 편안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을 보니까 많이 친해진 것 같다.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 중 명절에 대한 특이한 고정된 생각들이 있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야만 하고 함께 음식을 만들어야만 하며 함께 차례를 지내고 함께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이상하게 어색하고 서운하고 죄 지은 것 같기만 하다.

추석과 설날이다.

필자는 경기북부 노숙인들의 문화회복과 사회복귀를 추구하는 ‘의정부시 희망회복종합지원센터’의 책임자로 근무 중이다.

올해 추석에는 예전에 가졌던 추석문화를 한데인들과 함께 공유하는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진행하고 있다.

인생 중 일정기간을 노숙인이라는 이름으로 생활을 하다가 주거지원사업을 통해 집을 마련하고 독립생활을 하는 분들 중 약 40가정을 선정했다.

우선 먹거리로 지역에서 후원해 주신 컵라면과 마스크, 밑반찬, 일회용 샴푸 등을 제공하면서 건강상태, 안부 및 집안 등 주변환경 확인 등을 파악하게 된다.

오늘이 3일째로 총 26가정을 방문하였다. 굵은 비가 주룩주룩 내림에도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대상자들은 모두 남성으로 집안은 예상보다 깨끗한 편이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센터장이 방문하니까 최대한 깨끗하게 청소하고 있으라고 직원들이 미리 귀뜸해 주었다고 한다. 어찌되었건 일단은 보이는 곳은 청결하니까 조금은 안심이 된다.

우리 센터는 하루에 1끼는 도시락을 제공하고 나머지 2끼는 햇반과 컵라면이 제공되는데, 오늘 아침에는 도시락 납품업체 대표께서 방문을 하셨다.

매년 차례상을 차릴 수 있도록 음식을 준비해 주시고 아무리 가정이 아닌 시설이라고 해도 격식은 갖추어야 한다며 일부러 목기까지 구입해 챙겨 주시는 고마운 업체이다.

추석문화에 관한 추억나눔의 수다가 시간가는 줄 모르게 이어졌다.

지난 번 추석과 설날 등 관련 사진들을 보여드리니 너무 빈약하다며 선뜻 양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약 20여분이 먹을 수 있도록 송편과 전, 빈대떡, 잡채 등을 넉넉하게 준비하겠다고 하신다.

양도 맛도 푸짐한 추석이 될 것 같다.

“센터장님~ 추석이 임박했는데 김치 좀 드리려구요. 맛있게 담갔으니 이용인 분들이 좋아하실 것 같아 전화 드렸어요.”

지역 내 흥선동새마을부녀회장의 전화다. 겉절이로 무려 3통이나 주셨는데 최소한 한 달 반은 걱정 없이 드실 수 있을 분량이다. 정말 맛나게 드신다.

“센터장님~ 두시간 후에 반찬 갖고 갈테니 지난 번 드린 빈 아이스박스 주세요.”

의정부제일시장 번영회 관리과장 전화다.

부랴부랴 외부 일을 마치고 센터로 복귀하니 이미 트럭에서 큰 아이스박스를 내리고 계신다.

‘영양떡, 한우사골육수, 감자조림, 콩자반, 숙주나물, 명란젓 등’ 20여가지의 반찬이 가득한 것을 보니 괜히 즐거워 진다.

의정부제일시장은 1976년에 설립된 경기북부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전통시장으로 630개의 점포가 있는데, 오늘의 밑반찬은 현재 각 점포에서 판매하고 있는 것들 중 하나씩 보내준 것이라 하여 더욱 귀하기만 하다.

얼마 전 문화회복을 위한 노숙인지원사업 진행 차 제일시장을 방문했을 때 관계자들이 밑반찬후원을 약속했고 월 2회 고정적으로 제공해 주겠다고 했는데 이 날이 두 번째이다.

현재는 도시락과 햇반, 컵라면 등을 제공함으로 충분치는 않지만 그런대로 욕구는 해소된 것 같은데 문제는 반찬이었다. 이제부터는 전혀 반찬으로 인한 갈등은 없을 것 같다.

누구에게나 기억이라는 것은 소중하다. 아니 추억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리고 명절과 관련된 기억은 누구에게나 아름답게 남겨져 있을 것이다.

이것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도 소중한 자기치료이다.

앞으로는 우리 한데인들이 현실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가끔씩은 있는 그대로 흘려보낼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이웃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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