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발(剃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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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발(剃髮)
  • 한북신문
  • 승인 2022.03.1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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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논설주간 홍정덕 교수
논설주간 홍정덕 교수

1644년 11월18일 예친왕 도르곤은 어린 황제 푸린을 대동하고 자금성에 입성하여 청(淸)제국의 중국정복을 만천하에 공포하는 황제 대관의식을 거행한다,

병자호란 당시 여진족에 인질로 잡혀 심양에 머무르던 조선의 소현세자와 봉림대군도 청군과 함께 이 의식에 참가하게 되는데 그들 조선의 왕자들은 오랫동안 여진족을 야만인이라 멸시하던 명(明)의 대관들이 하루아침에 여진족의 변발과 호복으로 복장을 바꾼 채 늘어서서 황제폐하 만세를 고창하며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의식을 진행하는 모습에 경악하게 된다.

이들이 바로 어제까지 그토록 충효와 성리학적 가치를 강조하던 명의 신하들이며 사대부들이라는 사실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이후 조선의 사대부들은 중국의 전통 가치관은 죽었고 그 아름다운 정신과 문화의 정통성은 조선이 이어받았다는 소중화(小中華) 관념을 견지하게 된다.

중국을 장악한 불과 250만의 유목민들이 인구 2억의 대륙을 어찌하여 250년이나 강력하고도 성공적으로 통치했는지는 지금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의 하나이다. 물론 팔기군이라는 강력한 군사제도, 모든 관리직에 여진족과 한족을 병용하는 이원집정제, 중국문화의 존중, 영토의 지속적인 확장, 여진족의 토지 독점, 강력한 학문, 사상 통제 등 청의 성공적인 통치를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이 있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강자 앞에 자진하여 굴종하는 저들의 민족성에 있다.

이 이민족의 강력한 통치 시기 한족은 그 아래서 여진의 문화와 풍습에 구속적으로 얽매이게 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체발」이라고도 불리는 변발과 여진복장인 치파오 의 강요였다. 앞머리를 깎고 뒷머리를 길러 땋는 기마민족의 머리모양은 한때 치열한 거부와 저항이 있었으나 결국 중국의 한족 모두가 수용하게 되었고, 치파오 역시 남녀의 일상복이 되었다.

그러나 현대에 중국인들은 그 누구도 그 체발과 치파오를 자신들의 전통문화로 인식하지 않는다. 200년 넘는 긴 세월 자신들의 선대가 착용하였던 옷과 머리 모양을 사극(史劇) 배우들 외에는 아무도 입거나 조발하지 않는다. 이제는 부끄러운 역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들이 갑자기 우리의 한복이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자 이를 자신들의 옷이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농담이거니 했더니 이게 장난이 아닌 진심이다. 「한푸」라는 듣도 보도 못한 정체불명의 명칭을 갖다 붙이고 사극에 등장시키더니 이번 자신들이 주최하는 동계 올림픽에서는 아예 공식행사에 동원하는 폭거를 저질렀다.

이제는 나아가 베트남의 ‘아오자이’도, 축구도 미니스커트도 태권도도 가라데도 심지어는 스키 조차도 그 모든 것이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 우겨댄다. 조선족이 중국의 56개 소수민족이니까 그 조선족 혈통인 윤동주, 안중근은 물론 손흥민도 김연아도 모두 중화인이라는 해괴한 우김질도 등장했다.

그대로 웃고 넘길 일인가 만은 이를 바라보는 전 세계인들 앞에 스스로 부끄러울 줄도 알아야 한다. 하루아침에 목숨을 구걸하며 불과 8살의 어린 여진족 추장 푸린 앞에 체발하고 호복 갖추어 입고 고개를 깊이 숙여 황제폐하 만세를 외치던 명의 대신들, 중국인 스스로의 그 초라한 꼬락서니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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