朱子 정통론의 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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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子 정통론의 폐해
  • 한북신문
  • 승인 2021.12.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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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논설주간 홍정덕
논설주간 홍정덕

조선 건국을 주도한 세력이 고려 말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사상의 총체적 난국을 해결할 방도로 추진한 개혁론의 사상적 근거는 성리학이었다.

성리학은 공자와 그 제자들의 사상을 철학적으로 한 단계 승화하여 이를 사대부의 수기에 머물지 않고 치국, 평천하로 확장하는 대세 유학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조선 초기, 건국과 왕권 안정에 기여하면서 조선의 정국을 이끌어 가던 이른바 훈신세력들은 이 성리학을 경국의 이념으로 활용하였을 뿐 이를 절대화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성리학을 절대 유일이념으로 추구하는 이른바 사림과 치열한 정쟁을 전개해 나갔다.

연산군을 몰아내는 반역을 성공시켜 이를 반정이라고 정당화하면서 기존의 훈신을 대신하여 정권을 장악한 사림은 경국의 유일사상체계로 성리학을 절대화하기 시작하였고 그 중심에 조광조가 있었다.

그들은 국왕조차 이 성리학 체계에 종속된 이른바 ‘제1 사대부’로 간주하고 국왕 역시 성리학에 능통한 성리학자가 되는 것이 치국의 근본이라 여겨 국왕의 첫 번째 책무를 경연에 두고 최고 통치자를 신하가 가르치는 기묘한 통치체제를 확립해 갔다.

이 성리학 체계의 효율성과 정당성이 의심받기 시작한 것이 이른 바 「양난(兩亂)」이었다.

왜란이 발발하면서 국왕과 사대부들은 평소 그렇게 강조하던 사대부 본연의 자세를 팽개치고 제일 먼저 도망가 버렸고 결국 나라를 지킨 것은 근본도 없던 민초들, 즉 의병과 승병들이었다. 하물며 호란에 이르면 더 할 말이 없어진다.

국왕이 온 백성이 주시하는 가운데 여진족 오랑캐의 추장 앞에 삼배구고두를 올리며 항복하는 추태를 벌이고 온 천지가 도륙되고 약탈당하는 상황을 대책 없이 바라만 보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같은 상황을 겪고도 성리학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과 정책적 대안은 모조리 사문난적으로 몰리며 성리학적 유일체계는 더욱 강화되어 간다. 이른바 주자정통론이며 소중화 이론이다. 주희와 경전 해석을 달리하였다는 이유만으로 윤휴는 죽임을 당하고 박세당은 유배형에 처해진다.

양명학을 모색하였던 이른바 강화학파는 이단으로 규정되어 진멸되었고 실학의 성과들은 패배자 남인의 소유로 전락하며 실용화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서학은 세계에서 그 유래를 찾지 못할 혹독한 탄압을 받으며 수만의 순교자를 내게 된다.

이념이 유일화되고 절대화되면 어떤 결과를 맞았던가? 우리는 독일, 이태리의 파쇼즘, 스탈린의 대숙청, 모택동의 문화대혁명, 그리고 북한의 전제정치에서 그 참혹한 결과를 뚜렷이 목격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의 사회주의적 정책 시안이 유일 대안으로 이 나라 정치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실험되어서는 안 된다. 이념이 정치의 도구로 활용될지언정 정치가 이념에 종속되어서는 결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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