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리 토성, 이대로 사라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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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리 토성, 이대로 사라지는가
  • 한북신문
  • 승인 2021.10.1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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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논설주간 홍정덕.
논설주간 홍정덕.

그곳의 지명은 정확히 말하면 「비선거리」였다. 비석들이 죽 서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을 우리는 비성거리, 비상거리라고 양주 사투리로 불렀다. 그곳의 행정지명은 남방리였는데 양주가 시로 승격되면서 2003년 10월 19일 양주1동 관할의 남방동으로 변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이곳을 ‘비석거리’라고 통칭하는 데 여러 고지도에 「비립가(碑立街)」로 나타나고 있어 ‘비석이 서있는 거리’, 즉 비선거리가 맞다.

의정부 녹양동과 양주 남방동의 경계지점인 그곳은 양주목사의 부임로이자 양주관아로 연결되는 대로였기에 역대 양주목사의 선정비가 죽 세워져 있던 곳이었으나 현재 그 양주목사의 선정비들은 대부분 복원되고 있는 양주관아로 옮겨져 있다.

그 자리에 작지 않은 토성(土城)이 있고 문화재 명칭으로는 ‘비석거리 토성’으로 불린다.

○… 비석거리 토성은 산성동이라고도 불렸던 양주시 남방동 산138-5번지 일원에 위치한다. 비고(比高)가 약 10m 정도 되는 평탄한 산기슭의 말단 구릉이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곳에 있다. 과거에는 1~2m 높이의 토루(土壘)가 육안으로 확인되었지만 현재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구릉 남쪽으로는 현재 군용 대전차 차단벽이 설치되어 있지만 북쪽에는 능선이 남아 있다. 토루의 흔적이 거의 없어진데다가 성내 부분인 도로 남북쪽 평지에는 민가가 있고 북쪽 구릉 일대에는 민묘가 있다.

1998년 지표 조사로 도기 조각과 기와 조각이 발견된 이외에 유물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비석거리 토성을 신라와 당나라의 전쟁 지역인 매초성(買肖城) 터로 추정하기도 하나 관련 자료가 매우 부족한 실정으로, 인근을 포함하여 발굴 조사가 면밀하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양주군의 역사와 문화유적』(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양주군, 1998)>

아마도 고구려가 백제의 진공을 막기 위해 쌓은 것으로 추정되고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한 후에는 신라와 당의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도 보이는 의미 있는 곳이다.

이 성이 방치된 채 허물어지고 있다. 이제는 거의 흔적조차 사라진 그냥 낮은 언덕으로만 보인다. 이 성에서 고개를 들면 마주 바라보이던 동편 천보산 산봉우리 위의 고구려 보루성 두곳은 각각 군 시설과 TV 중계탑이 들어서면서 이미 사라지고 없다.

양주지역이지만 이 성의 성벽 바로 아래 오랜 기간 의정부 시내버스 종점이 있었고 잇닿은 대로에는 대전차 방어시설이 들어서 있다. 이 성의 파괴에 의정부시 역시 큰 역할을 한 것이다.

군사문화의 낡은 옷을 비판하기 전에 문화도시의 읍격에 맞는 문화재보호가 필요하다. 의정부와 양주는 함께 이 오래된 유적의 복원과 보호에 나서야 한다. 후손들의 보람되고 막중한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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