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라키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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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라키스모스
  • 한북신문
  • 승인 2021.05.2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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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기원전 471년 살라미스 해전의 영웅 데미스토클레스는 조국 아테네에서 추방되었다.

경각에 달렸던 아테네를 강대한 침략국 페르시아의 손에서 구해낸 위대한 전략가이자 뛰어난 정치가였던 그는 아무런 범죄의 혐의 없이 오로지 많은 표를 획득하였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한 때 자신에게 다함없는 존경과 환호, 지지를 보내던 전우이자 동료였던 아테네 시민들에 의하여 추방되어 기약 없는 해외 망명객의 신세로 전락하였고 그가 죽을 때까지 귀국할 수 없었다.

그를 비참하게 해외로 추방한 것이 바로 「오스트라키스모스(Ostrakism), 즉 ‘도편투표(陶片投票)’였다.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이름을 깨진 항아리조각에 적어내는 이 무작위 투표는 1년에 한 번 진행되며 이 투표에서 6000표 이상의 표를 받으면 그가 실제로 독재를 하려 했던, 아니던 간 무조건 10년간 해외로 추방하는 제도였다.

모든 것을 투표로 결정하던 직접민주정치 체제의 아테네에선 어떤 안건이건 뛰어난 언변과 리더십으로 시민을 설득하여 다수의 찬성표를 얻으면 그 안건이 법률이나 국가정책으로 채택될 수 있었다. 따라서 아테네에서 고위직으로 출세하려면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했고 이 때문에 어려서부터 논리와 수사학, 그리고 웅변을 배웠다. 그러나 옳고 그름을 떠나 오로지 설득만으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었던 투표 만능체제는 논리만을 앞세우는 궤변론자들을 출현시켰고 분명히 잘못된 정책인데도 불구하고 단지 다수가 찬성하면 법으로 채택되는 이른바 ‘바보정치’로 잘못 흘러가 결국 아테네가 몰락하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동하게 된다.

‘도편투표’도 처음에는 독재자의 출현을 사전에 예방하고 민주정치를 수호하려는 좋은 목적으로 시행되었으나 결국은 설득에 넘어간 어리석은 다수에 의하여 훌륭한 지도자들을 아테네에서 추방하는 나쁜 제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실제로 아테네의 유적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많은 도편투표 조각을 검사해보니 같은 사람의 필체로 적혀진 데미스토클레스라는 투표조각을 찾아내 누군가 한 선동자가 여러 편의 투표조각을 만들어 돈을 주고 매수한 시민들이 집중 투표하게 하였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문자폭탄이 유행한다고 한다.

특정 정당의 당론과 다른 의견을 표명한 자당 정치인은 물론 자기들을 비판하는 언론, 심지어는 자신들과는 결이 다른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하거나 저들의 주장과는 다른 판결을 내린 법조인 등에게 조차 심한 욕설과 함께 대량의 비판 문자를 발송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해당 인사의 전화번호나 메일주소를 공개하여 동료들로 하여금 비방 문자를 집중적으로 보내도록 유도한다고도 한다.

독선과 교만, 편협한 진영논리가 힘을 가지고 한 때의 위대한 민주국가를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침몰시켜버렸다. 기억해야할 역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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