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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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금강산
  • 관리자
  • 승인 2019.11.2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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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규 논설위원·여행작가
10월 말 김정은이 북한 금강산 지구 내에 있는 남측 관광시설이 흉측스럽다며 철거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렇다면 북한은 남북교류에 대한 기대를 접은걸까.
휴전선 인근에 있는 금강산은 우리에게 분단의 아픔이자 통일에 대한 염원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한 관광객의 피살로 야기된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우리의 마음 속에서 금강산은 점차 잊혀져갔다.
금강산 여행은 신라때 비롯되어 고려,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화랑 등 많은 사람들이 금강산에 다녀갔다. 하지만 본격적인 여행은 일제시대 경원선의 개통으로 단발령을 경유해 내금강으로 수학여행을 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 단발령은 옛날 한 나그네가 금강산 구경왔다가 이곳에 이르러 동녘의 완만한 산 능선 위에 우뚝 솟아오른 일만 이천 봉 암산이 석양 빛을 받아 수정처럼 하얗게 빛나는 장관을 보고 그 신비하고 영험한 분위기에 도취되어 금강산에 들어와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오랜 역사를 가진 표훈사 등 옛 사찰과 산세가 빼어나고 온갖 계곡과 연못들이 아름다운 내금강은 가보지 못하였지만 외금강에서 기이한 만물상과 흰 비단 자락을 드리운 듯한 구룡 폭포, 에메랄드빛 옥류담과 상팔담에 깃든 전설을 듣고 탄성 지르던 때를 생각하면 금강산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속에 사무친다.
지척에 있는 금강산을 배타고 가면서 우리나라가 분단국임을 절실히 느꼈기에 지금도 내 기억 속에서 연화각에서 바라본 금강산을 잊을 수가 없다. 4월 말경 금강산은 태백산맥 허리에 눈 덮인 산줄기를 남북으로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나는 연화각 난간에서 하얀 구름 위에 드러난 비로봉(1638)을 바라보며 저 산 너머 남쪽에 있는, 분단의 상징이자 남북을 가로막은 철책이 걷혀질 그날이 오기를 간절히 빌었었다.
지금쯤 붉게 단풍들어 있을 가을의 금강산(풍악산)을 생각하니 그리움과 동시에 근심이 더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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