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무리 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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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무리 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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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11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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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보병 제26기계화사단이 창설된 것은 동란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1953618일 충청도 논산에서였다. 사단 창립 이후 이 사단은 화천, 양구, 연천을 거쳐 1964년 양주에 자리 잡았다.
1979년 이후 충정사단, 즉 시위나 쿠데타에 대응하는 부대로 지정되면서 사단의 위격이 크게 부각되어 이에 따른 훈련과 기강이 세기로 소문이 났었다. 부대 로고에 도안된 해와 달 모양이 얼핏 어느 신용카드회사의 카드 로고를 몹시 닮아 있어 <카드부대>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고 하도 훈련이 빡쎄서이 사단에 배정되면 해가 뜰 때부터 달이 질 때까지 숨찬 고생이 계속된다는 푸념이 따르기도 했다.
12.12사태 당시 쿠데타세력에 격렬히 저항했던 장태완, 그 사태의 주역이기도 했던 박희도, 황헌친, 유학성, 3군사령관을 역임한 서종표, 근래에 들어 공관병 갑질 문제로 화제에 올랐던 박찬주 등이 바로 이 사단을 지휘한 후 군의 중요 보직으로 진출한 사단장들이었다.
1994101일 기계화사단으로 개편되었고 30사단 소속이던 92여단 120기보를 흡수하여 편제를 기계화보병사단으로서의 편제를 갖추었고 2014년 호국훈련에서는 단 하루 만에 여주 남한강 방어선을 돌파하는 기염을 뽐내기도 하였다.
군 구조 개혁에 따라 2010년대 중반부터 점진적인 해체 과정에 들어가 2016121일부로 6군단에서 7군단으로 예속되고 사단 산하의 75여단·76여단 등이 먼저 해체되었고 75예하 38전차가 5기갑여단으로 복귀했으며, 76예하 126기보대가 5기갑으로 배치되었다.
75여단 산하 125기보대는 73여단으로 옮겨졌고, 27전차는 분해되었으며 마찬가지로 76여단 산하 25전차도 해체되었다. 결국 20181130, 포천에 주둔하던 제8기계화보병사단에 통합, 해체되었다.
군사 편제는 작전 개념과 정세의 변화에 따라 수시로 변동되는 것이 상식이다. 과거와 같이 물량, 인원 위주의 작전이 정밀한 전자전, 입체전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부대가 해체되고 통합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과정이기는 하다.
그러나 60년을 넘겨 존속하며 양주 지역에 위치하던 강한 훈련과 기강, 그리고 대통령 부대표창 7회에 이르는 눈부신 전과를 쌓아 올리던 배속사단 장병들의 자부심과 긍지였던 부대가 이토록 자취 없이 사라지는 일 역시 변화의 당위성과는 관계없이 섭섭하고 안타까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사단 본부가 있던 자리와 부대의 모습은 그대로 인데 영롱하던 부대 표시와 마크는 이제 지워져 버렸다.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들의 가슴에 언제까지라도 현재로 살아남는다. 누군가 그 부대와 인연을 맺었던 이들의 기억 속에 26사단은 지워지지 않는 현재로 남아 있을 것이다.
26사단의 별칭인 불무리는 타오르는 불기둥을 의미한다. 비록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는 했어도 그 사단가처럼 호국의 전설로 계속 타오르는 불기둥이기를 염원해 본다.
눈부신 햇살아래 옥토 삼천리, 짙푸른 향내나는 내 조국 강토 어둠이여 사라져라 찬란한 아침, 지켜서 억만년을 누려보리라. 아아, 우리는 불무리의 용사, 식을 줄 모르는 불무리 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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