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캐 정신
상태바
오랑캐 정신
  • 관리자
  • 승인 2019.02.22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훙타이지가 아버지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후금의 칸이 되었을 때 여진족은 안팎의 우환에 휩싸였다.
하나는 후금(後金)에 대한 명()의 견제가 본격화 되어 교역이 금지된 것이었고 또 하나는 여전히 후금에 복속하지 않고 저항을 계속하는 주변 유목세력의 도전이었다. 특히 명의 경제제재는 주요 생필품의 조달 통로를 막아 후금을 경제적 공황상태로 몰고 갔다. 그러나 홍타이지는 이에 굴하지 않고 국가 규모를 계속 확대하며 명() 대한 도전을 쉬지 않았다.

결국 1644년 국가를 세운 지 26년 만에 북경에 입성하여 황제 즉위식을 다시 거행하고 1662년 명의 잔존세력을 일소함으로 중국대륙 전체를 지배하게 된다.
장한식(張漢植)2015년에 펴낸 책 <오랑캐 훙타이지, 천하를 얻다>에서 이를 <오랑캐정신>이라고 풀었다. 스스로를 <오랑캐>라고 인정하고 부족의 활로를 대륙 침략에 두어 그 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전력 투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랑캐 정신>이다.
누르하치와 훙타이지, 도르곤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현재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 먼저 중점을 두어 부족전체를 군사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팔기(八旗), 둔전(屯田)제를 강화하고 이 바탕 위에서 실력 위주의 인재 발굴과 등용에 과감하였으며 자신들에게 극렬히 저항하던 적군이라 할지라도 항복하면 즉시 고위직에 기용하였다.

범문정(范文程), 홍승주(洪承疇), 오삼계(吳三桂) 같은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그들은 청에 충성을 다하며 조국 명의 멸망에 헌신적으로 기여하게 된다.
여진 이름 누르하치의 뜻은 <멧돼지>이다. 그러나 그는 대칸의 지위에 오르면서도 이 이름을 고치지 않았고 외교문서에 당당히 사용하였다.
여진은 중국 정복 후에 자신들의 통치를 수긍하지 않는 수백만의 중국인을 참혹하게 처형한다. 그리고 자신들을 직·간접으로 비방하는 모든 글의 저자들을 역시 참혹하게 처형한다. 자신들이 요구하는 여진 복장, 이른바 체두 변발을 거부하는 모든 이들을 구분 없이 참혹하게 처형한다.
그리고 중국 전통 문화, 학술 진흥에 전력을 기울이고 중국의 경제를 사상 유래 없이 부흥시켜 풍요로운 상황을 만들고, 중국인들을 기용하여 최고위직에까지 등용한다. 중국 최대의 전성기를 뜻하는 당() 태종(太宗)<정관(貞觀)의 치()>를 뛰어 넘는 이른바 강건성세(康健盛世)이다.
우리도 한 때는 이 <오랑캐정신>이 투철했던 적이 있었다. <안되면 되게 하라> <우리도 한 번 잘살아 보세> 그런 구호를 앞세우고 꿈을 꾸던 그 시절의 그 <오랑캐정신>을 전 세계는 <한강의 기적>이라 칭송했었다.
우리는 분명 그때보다 잘 사는데, 더 민주적인데, 더 균등한데, 더 나아졌는데, 그런데도 분명히 그런데도 무언가를 잃은 듯한 이 맥 빠진 기분은 도대체 무엇일까?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