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한국식 나이 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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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한국식 나이 셈법
  • 관리자
  • 승인 2019.02.2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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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원기 논설위원·신한대 공공행정학과 교수

올해는 황금돼지해라고 한다. 정초부터 돼지꿈을 꾸는가 했더니, 한 살 더 먹는 꿈만 꾸었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니 우리나라 국민 전체가 일제히 한 살 더 먹었다. 태어난 날은 제각각 달라도 11일을 기준으로 전 국민의 나이가 늘어난 것이다. 이것만큼은 일사불란해서 참 특이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여기서 우리 사회의 나이 셈법을 되짚어 본다. 먼저 우리 사회는 태어나자마자 1년으로 간주해서 한 살을 먹게 된다. 엄마 뱃속에서 생명이 잉태하는 순간, 이미 인간 생명체로 존중하기 때문이다. 10개월 동안 잉태부터 인간형상의 완성체로 자라나는 과정을 존중하는 것은 숭고한 인간애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포함하여 나이를 산정하는 것은 일면 수긍이 간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부터이다. 태어난 날이 언제이든 간에 다음 해 시작일을 기준으로 두 살이 되는 나이 계산이 애매하기 짝이 없다. 가령 201811일에 태어난 아이는 201911일 기준으로 두 살이 된다. 이 아이의 나이 계산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런데 20181231일에 태어난 아이도 201911일 기준으로 두 살이 된다. 이 아이는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졸지에 두 살을 먹은 셈이다.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인가.
애매한 나이 셈법은 일상생활에서 적지 않은 혼란을 주고 있다. 상대방의 나이를 묻게 되면 한국 나이로 몇 살, 만으로 몇 살이다는 식의 응답이 오간다. 각종 서류에 만 나이를 기재할 때도 순간 당황스런 기분을 느낀다. 통상 한국 나이에서 일 년을 뺀 나이를 만 나이로 알고 있다. 그래서 머릿속으로 한국 나이를 계산하며 만 나이를 적어 넣는다. 그러나 이것도 상반기에 태어난 경우이고, 연말 가까운 날에 태어난 경우는 일 년을 뺀다 해도 정확한 만 나이가 아니다. 도무지 앞뒤가 개운치 않은 한국식 나이 계산이 아닐 수 없다.
한국 사회만큼 나이에 예민한 문화도 드물다. 한국 사회에서는 나이가 일종의 거대한 기수로 작용하고 있다. 개인 간 만남은 일단 나이를 밝히고, 누나, 언니, , 오빠 등으로 서열을 매긴다. 나이가 서열문화의 보편적 기준이 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식 나이는 개별성보다는 전체성을 강조하는 연 단위 셈법으로 고착해 왔다.
이제라도 국제적 흐름에 맞춰 한국식 나이 셈법을 수정할 때가 되었다. 언제까지나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고집하기에는 합리성이 부족해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는 두 가지 과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첫째는 나이 산정을 언제로 시작할 것이냐이다. 지금처럼 엄마 뱃속에서 잉태한 시점부터 나이를 적용할 것이냐, 아니면 엄마 뱃속으로부터 출생한 시점을 기준으로 할 것이냐를 정해야 한다.
둘째는 만 나이를 연으로 계산할 것이냐, 월로 계산할 것이냐, 아니면 일수로 계산할 것이냐의 명확성이다. 이 두 가지를 선결해야만 일상에 적용해도 혼란이 없다. 외국의 경우는 대체로 태어난 날을 기준으로 하며, 일수로 계산하여 만 나이를 설정하고 있다.
작금 한국사회도 법적인 업무 등에는 만 나이를 사용하고 있다. 공소장에 기재하는 피고인과 피해자 나이는 만 나이로 기재하고, 재판실무 서류에도 만 나이를 기재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만 나이를 공소장 나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제는 누구나 명확한 기준을 인식하고 통용할 수 있는 나이 셈법이 필요하다. 국가는 이것을 개인의 사적 영역이라고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사적영역이라 해도 비합리적 기준이나 혼란을 주는 것은 국가가 나서서 수정할 필요가 있다. 새해는 우리 사회가 나이 셈법부터 시작해서 만사가 합리적으로 움직였으면 한다. 그것이 진정한 복돼지 꿈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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