랍비 벤 카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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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비 벤 카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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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1.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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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서기 70년 베스파니아누스가 지휘하는 로마군은 유대인들의 거친 저항을 물리치고 마침내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성중에서는 민족주의 강경파 카나임이 중심이 되어 전멸을 각오한 마지막 일사항전이 준비되고 있었고 항복 권유를 무시당한 로마군은 관례에 따라 예루살렘 함락과 함께 성 전체를 철저히 파괴할 방침을 굳히고 성을 봉쇄한 채 단 한명의 피란도 용납하지 않고 주민 모두를 죽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랍비 벤 카자이가 나섰다. 위독한 현 로마황제의 후계자로 유대 공격군의 총사령관인 베스파니아누스가 다음 황제로 지명될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카자이는 베스파니아누스를 만나자마자 그에게 황제폐하에게 문안드립니다라는 당돌한 인사를 드렸고 베스파니아누스는 이 인사를 단순한 덕담으로 이해하였으나 카자이와 만나 회담하던 중 정말 로마로부터 차기 황제로 지명되었으니 유대 정복이 완료되는 대로 속히 귀국하라는 명령를 받자 그는 카자이를 신의 선지자(先知者)로 알고 존경하게 되었다.

이에 카자이는 베스파니아누스에게 한 가지만이라며 부탁을 하게 된다. 이제 예루살렘이 함락되어 도시 전체를 파괴할 때 랍비를 키우는 신학대학이 있는 야브네 거리와 그 대학의 교수 10명은 보존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작은 청탁은 순순히 승낙되었고 도시 전체에 대한 파괴와 처형, 약탈이 진행되는 동안 야브네 대학은 파괴를 면하게 된다.

위대한 랍비 벤 카자이는 이후 고향에서 축출되어 전 세계를 유랑하게 되는 유대 디아스포라를 보존하고 지키고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 유대 국가를 회복할 단 하나의 방법이 유대의 종교적, 민족적 가치를 가르치는 교육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는 그 방안으로 학교와 교수의 보존을 목숨을 걸고 확보해 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후 고향에서 추방되어 극심한 멸시와 천대, 차별을 받으며 학살과 억압 속에 2000년의 세월을 보내게 되고 마침내 조국으로 돌아와 이스라엘을 건국하고 사방의 아랍 국가를 제압하여 세계적인 기술, 산업, 금융, 군사의 강국으로 군림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들의 철저한 교육에 있다. 유대인을 유대인답게 만든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들이 자신들이 정의라고 믿는 종교, 민족적 가치, 언어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철저히 자녀들에게 가르쳐 왔다는 것이다.

랍비 벤 카자이의 혜안(慧眼), 학교와 교사가 보존되면 민족이 보존된다는 그 놀라운 선견(先見)은 유대인들이 겪어 온 그 숱한 고난을 이기고 유대인들로 하여금 세계의 부와 권력, 지식을 독점하고 세계를 지도하는 리더그룹으로 자리 잡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교육부장관의 임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난장판 같은 아집들을 바라보면서 정권만 바뀌면 따라서 바뀌는 교육철학, 입시 제도를 대하면서 교사를 교사로 대접하지 않고 스승다운 스승을 찾기 어려워진 세태를 보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학교 현장의 사건 사고를 접하면서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둠과 절망감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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