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문화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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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문화 지역
  • 관리자
  • 승인 2018.09.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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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의정부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한 나는 동급생들에게 의정부 아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의정부라는 내가 오래 살아 온 도시를 내 서울 동급생들은 미군이 주둔해 있는 곳이라는 의미로 이해했고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게 나는 절반쯤은 외국에 살고 있는 아이였다.
그들은 예를 들면 소풍가는 날 같은 때 내가 담임선생님을 위한 선물로 가져가는 선키스트 오렌지바나나또는 어머니가 도시락 반찬으로 챙겨주시던 같은 것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우리들 서울로 학교 다니는 기차 통학생들은 의정부 역전에 주둔하는 <빈넬> 회사 경내를 가로 걸쳐 가설된 구름다리를 넘어 다녀야 했고 미국 독립기념일이나 추수감사절이면 개방된 미군 기지에서 복숭아파이와 도넛 그리고 차디차게 식혀진 코카콜라를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의정부에 사는 의정부 아이였다.

오래 전 의정부시의 이런 저런 위원을 맡고 있을 때 나는 자주 이런 건의를 하곤 했었다. 곧 미군이 철수한다는 데 그러면 비워 반환하는 미군기지 중의 하나를 이렇게 활용하면 어떠냐? 그 중에 한 곳, 가능하면 미군부대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곳을 그대로 보존하자. 그리고 의정부를 거쳐 간 참전 미군들을 년도와 부대 단위로 초청하자. 그들을 그들이 한국에서 복무하던 당시의 군복을 입고 당시의 부대 막사에서 자게하고 당시의 부대 음식을 먹게 하자. 그리고 부대 안에 그 당시의 음악을 연주하고 그 당시의 시설을 재연한 클럽을 만들어 그 때 그들이 즐기던 술을 먹게 하고 그 당시의 영화를 보고, 그 당시의 춤을 추게 하자.

그 때처럼 경계 근무도 서고 그리고 낮에는 한국전 당시의 전적지를 순례하고 한국의 여러 역사 문화유적을 답사하고 발전된 모습을 눈으로 보게 하고 아직도 분단의 현장인 판문점과 땅굴을 방문하고 그들에게는 소중하지만 이제 자손들에게는 의미가 없게 된 훈장과 사진과 기록들을 기증받아 박물관, 전시시설을 만들어 그 기억들을 보존하자, 뭐 그런 내용이었다.

나의 제안을 들은 시청 담당자들은 무척 신선한 아이디어라며 귀를 기울였지만 그것으로 그뿐 아마도 나의 제안은 별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만 듯하다. 미군이 철수한 옛 기지들이 각각의 다른 모습으로 재개발되었거나 개발되고 있기 때문이다.

2004<다큐인포>라는 탐사그룹이 간행한 <부끄러운 미군문화 답사기>라는 책이 있다. 한국전쟁, 미군의 양민학살, 매향리 사격장, 미군 위안부, 혼혈인, 환경오염, 미군범죄, 소파협정 등을 주제로 이 책은 미군의 주둔지를 부끄러운 곳으로 단정했다. 많은 부분 공감도 되고 이해도 되었다.

그런데 그 부끄러운 곳에서 유·소년기, 청년기를 보내고 지금도 살고 있는 나의 실제 기억은 그들의 이성적인 문화 규정과 많이 어그러진다.

중요한 것은 부끄러워도 역사이고 수치스럽고 분해도 역사는 역사다.’

부끄러운 것도 정확히 파악하고 해석하고 교훈으로 삼는 것, 그것이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다. 미군이 주둔했던 시기의 의정부·양주·동두천역시 기억하여야 할 의정부·양주·동두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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