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의 의정부 모습
상태바
1930년대의 의정부 모습
  • 관리자
  • 승인 2018.09.05 15: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하로 쯤 들에 나가 노는 것이 엇덜가 하는 의론이 생긴 지 몃칠 후 617일 아츰 8시 반까지에 하나 씩 하나 씩 모혀 든 사원 일동은 경원선 렬차에 몸을 실고 의정부를 향하여 떠났다. 밧분 일 업시 촌길을 거러가는 자미, 뽕 밭에 드러가 오듸 따먹기에 정신업는 선생을 재촉해 내면 이번에는 선생이 촌 막걸니 집에 드러가서 나오지 안는다. 역에서 얼마 못 가서 밤나무 소나무가 욱어진 나무숩 미테 구수한 풀밧은 우리를 가다리는 돗자리엿다.(중략)무슨 이약이, 자미잇는 작란 촌사람과의 담화 그리고 촌집에 부탁해서 반찬은 업것만은 후미한 점심밥 갈비구어 놋코 술을 난호면서 시간은 깃블 중에 짓허갓다.’ (사원 원유기)

우리가 차 한 칸을 독차지하고 앉어, 나는 막연히 교외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천뢰에게 끌려 소통(疏通)에 당한 실록 초를 보며 구절을 뜨이었다. 삽시 간에 의정부에 다달었다. 우리는 다 나렸다. 먼첨 음식점으로 들어 점심요기는 갈비와 약주로 하다. 갈비는 질기기는 해도 맛있다.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得)이다.( 도봉산기행 - 이병기)

이 두 사료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각각 작성되어 <삼천리>에 게재된 기사 중의 일부로서 당시의 지식인들인 문인과 기자들이 의정부 지역을 탐승한 후에 작성한 기행문의 일부이다. 재미있는 것은 경원선 개통 이후 의정부역이 설치되면서 폭발적으로 도시화되고 있던 상황에서도 여전히 당시의 의정부는 한적한 변두리 농촌 마을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사원 원유기>에 묘사된 의정부는 오디 따먹고, 웃통 벗고 흐르는 냇가에서 가재를 잡는 전형적인 소규모 농촌 마을의 모습이다.

그런데 의정부를 탐승한 이 기사들에는 공통점이 하나있다. 식당에서 갈비구이를 먹고 있는데 맛이 아주 좋다고 되어 있다. 특히 시조시인 이병기의 기행문에는 이 갈비구이를 일러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말을 바꾸면 경원선 열차를 이용하여 의정부역에 내려 의정부 일대를 탐승하거나, 잠시 바쁜 일상을 내려놓고 농촌의 여유로운 풍경을 즐기며 힐링하려는 방문객들은 당지에서의 식사로 <갈비구이>를 먹는 것이 의례였고 이로써 의정부 식당에서 내는 갈비구이가 특별한 별미로 꽤나 소문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 소고기를 먹지 못하게 금하였던 소위 우금(牛禁)이 풀리면서 전국 각지에 지금도 이어져 오는, 예컨대 나주 곰탕, 서울 설렁탕, 수원 갈비, 양평 해장국, 황등 육회비빔밥, 대구 육개장 하는 식의 쇠고기 요리 명소들이 등장하는데, 이들 쇠고기 요리 명소들은 현지에 큰 규모의 우시장이 서고 아울러 도살장이 병설되어 있어 질 좋고 신선한 쇠고기를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의정부장에 큰 규모의 쇠전이 열리고 금오리에 도살장이 있었던 사실이 명불허전으로 묘사된 의정부의 맛있는 갈비구이도 역시 이와 같은 상황 여건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보다 깊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