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과 미추홀
상태바
인천과 미추홀
  • 관리자
  • 승인 2018.07.23 05: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인천시가 최근 관할 남구의 명칭을 <미추홀구>로 변경하였다. 일방적인 행정 편의에 따라 작명되었던 동, , , , 중 등의 행정구역명을 지양하고 지역의 역사성, 정체성 등을 선명히 하여 주민의 지역성, 정체성이나 동질감, 애향심, 자긍심 등을 제고하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동, , , , 중 등으로 구분 명명된 행정명은 반드시 일제의 잔재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조선시대부터 나타나는 행정명이어서 전국각지에 산재하는 유사 지명은 그 유래가 생각보다 오래된 것들이다.

적성의 남면이 양주에 편입되어 양주의 남면이 되고 해당 지역이 양주의 가장 북편에 위치하는 데도 현재까지도 여전히 <남면>으로 호칭되는 것이 그렇다. 경주의 경우 동면(東面)의 안쪽에 내동면(內東面), 그 바깥쪽에 외동면(外東面)을 만드는 것이 상례였다.

백제의 건국주 온조왕(溫祚王)이 최초로 정착한 곳이 위례(慰禮)였고 삼국사기 기록의 혼란과 착각으로 이 위례의 위치를 한강 남쪽에서 찾는 억지 이론이 있으나 정약용이 명쾌하게 논파한 것처럼 온조왕 13년 천도기록에 나타나는 것처럼 초기의위례부아악(負兒岳), 지금의 북한산 아래에 있다가 한강 남안으로 옮겨 새로운위례,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으로 한성 백제 멸망 시까지 존속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며 근초고왕 대에 이르러 다시 옛위례지역으로 천도하고 이를북한산(北漢山)이라 하였다는 것도 이제는 상식이다.

온조와 뜻을 달리한 비류(沸流)가 백성을 나누어 바닷가 미추홀로 분리하였다가 복귀하였다는 삼국사기의 설명이 있으나 정작 미추홀이 지금의 인천 지역 어디라는 설명을 확증할 근거는 없다. 오히려 임진강 이남, 한강 이북 지역을 작전지역으로 하였던 광개토대왕이 점령한 성 중에미추성(味鄒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미추홀의 위치는 한강 이북과 임진강 남쪽 지역, 즉 지금의 파주 지역에서 찾아야 한다고 필자는 본다. 인천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문헌적, 정황적 근거가 현저히 부족하다.

문제는 이와 같은 허점에도 불구하고 인천이 미추홀을 자신들의 향토자산을 넘어 행정 근거로까지 확장하고 있고 이는 인천 해당 지역 주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계속 심화되어 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비류가 아닌 온조의 건국지임이 명확한 양주시, 의정부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이다. 이 두 도시는 이제부터라도 도시의 원초적 뿌리라 할 <백제>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절실한 필요가 있다. 실제적인 근거가 없음에도 한강변 고구려 유적의 대표성을 선점한 구리시의 경우를 보아도 이 문제는 상당히 시급해 보인다.

뿌리를 함께하는 두 도시는 이제라도 향토자산의 확충이라는 면에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의미있는 노력을 경주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