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없는 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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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없는 떡국
  • 관리자
  • 승인 2018.01.20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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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6.25전쟁이 일어나기 전인 이른 봄 어느 날 새벽, 동이 트기도 전에 시아버지는 양학준 노인이 경무대 주방에서 국 끓이는 냄새를 맡고 잠옷 바람으로 나갔다. 한참동안을 기다려도 돌아오는 기척이 없어서 방문을 열고 나갔더니 주방에서 시아버지와 양 노인이 도란도란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가 새벽의 찬 기운에 감기라도 들까봐 잠옷 위에 걸칠 가운을 들고 주방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는 시아버지와 양 노인이 북어대가리를 듬뿍 집어넣고 파와 고추를 넣어 끓인 냄비를 가운데 놓고 대접 가득히 담은 국물을 마시고 있었다. 시아버지의 표정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고 한다. 부인을 여의고 혼자 사는 양 노인은 술을 대단히 좋아했는데, 전날 밤 술을 마시고 아침 일찍 와서 자기가 먹으려고 끓여 놓은 해장국을 시아버지에게 나눠준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며느리 조혜자씨의 회고록 <이화장 이야기>에 나오는 일화이다.

새벽 일찍 경무대 주방 한쪽에서 나이 먹은 주방장이 해장하려고 몰래 끓인 북어대가리 국을 영부인 모르게 나누어 마시며 행복해 했다는 대통령. ()이 어떠니 과()가 어떠니하는 그를 향한 항간의 시시비비(是是非非)가 여전히 왁자하지만 1950년대의 대한민국, 국민소득이 70달러도 안되던 극빈의 내전국을 그나마 온전히 보전하기 위하여 애쓰던 노인의 외로운 민낯 하나를 보는 듯 가슴이 시리는 일화 한 토막이다.

<이부란(李富蘭)> 여사가 누군지 아는 이가 이제 얼마나 될까? 독립할 희망이 전혀 없어 보이는 오래 전에 망해 버린 나라의 국권을 되찾아 보겠다고 온갖 구박이라는 구박은 다 받으며 여기저기 외교무대의 변두리를 기웃거리는 초라하고 가난한 중년의 불청객을 연민(憐憫)의 가슴으로 보듬어 안아 주고 결국은 그와 결혼하여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현대사의 격랑을 함께 헤쳐가야 했던 푸른 눈의 호주댁프란체스카 여사, 위의 글에 나오는 저 <시어머니>의 한국 이름이다.

설날을 맞아 그녀가 현미로 뺀 거친 떡을 썰어 북어껍질 육수에 끓여내 손님과 가족들에게 대접하던 그 떡국을 후에 그의 양자 이인수의 아들들은 마지못해 깨작거리며 맛없는 떡국이라 불렀단다. 대통령도 비켜갈 수 없었던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명절 식탁이다.

대륙에서는 지금 공산당 정권이 한때의 숙적(宿敵)이긴 하였어도 동시에 국민혁명과 항일의 지도자였던 장개석(蔣介石)의 정치적 복권을 진행하고 있다.

이승만이 떠나고도 어언 두 세대를 넘긴 이제 우리도 항일과 반공의 투사였던 노() 대통령과 화해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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