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빈 지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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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빈 지갑
  • 관리자
  • 승인 2017.12.2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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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올해는 오징어가 대흉년이란다. 물의 온도가 바뀐데다 북한으로부터 조업권을 사들인 중국 어선이 북한 수역은 물론 우리 동해에까지 대규모로 출어하여 특유의 싹쓸이 조업으로 남획하는 결과 한창 제철인데도 지금 동해에서는 오징어가 한 마리에 만원을 웃도는 고가(高價)에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꽁치 역시 나름 심각한 문제가 있는 모양이다. 이상하게도 어장이 형성되지 않아 반 토막이라고 부를 만큼의 신통치 않은 어황으로 올해는 <과메기> 맛보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래도 때가 되면 예전처럼 파시(波市)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흥청거린다 싶을 어장을 만들어 서민들을 즐겁게 해주던 생선들이 예전 같지 않다는 소식은 우울할 수밖에 없다.

사는 일이 그만큼 더 퍽퍽해졌다는 것 아닌가?

어느덧 세모를 맞는다. 어느 해인들 한 자락 회한(悔恨)없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법이 있을까마는 올해 정유년은 유독 마음 한구석 접히는 일이 많았다. 그래도 또 이렇게 큰 내상없이 한 해를 살아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 나는 나 스스로를 칭찬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어느 방송에서 한 출연자가 했던 경험담이 생각난다. 언제나 자식들 앞에서 당당하시던 아버지가 갑자기 병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진 후 오랜 만에 아버지의 방에 들어가 책상 서랍을 열어보니 아버지의 낡은 지갑이 들어 있었는데 그 지갑은 텅텅비어 있었단다. 그리고 보니 아버지께 용돈을 드린 적이 꽤 오래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는 쓰실 돈이 없어 궁색하신데도 자존심 때문에 어디에 말도 못하고 속앓이를 하셨을 아버지 생각에 목 놓아 한참을 울었다는 이야기였다.

벌써부터 이런 저런 모임을 알리는 전언(傳言)들이 쇄도하고 있다. 오래 못 만난 동창들, 늘 모이는 친구들, 이런저런 형편을 함께하며 진행해 온 업무 관계자들, 여기저기 이름을 올린 모임의 관계자들, 그리고 제자들과 후배들이 세모(歲暮)를 핑계 삼아 만나자고 한다. 모두가 반갑고 마땅히 나가고 싶다. 그러나 나이 들며 모임에 나가 어른 구실하는 일이 그리 녹록치 않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그러니 아버지는 더 하시겠지. 그리움이 간절해도 구실이 탐탁치 않아 쓸쓸히 핑계대고 마다하시지는 않을까?

지금쯤 아버지의 지갑을 열어볼 때이다. 그리고 어느 만큼의 온기가 돌도록 그 지갑을 채워드릴 일이다. 세월은 무한정 기다려주지 않는다. 언젠가는 그 지갑을 채워드리고 싶어도 그리할 수 없는 아픈 날이 올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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