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란(胡亂).역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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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란(胡亂).역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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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9.2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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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만주에서 반농반목의 경제활동을 유지하며 명의 통제를 받던 여진족의 흥기를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그들이 가진 가장 중요한 문제는 뿌리 깊은 부족 간의 반목과 갈등이었다. 실제로 그들은 서로를 공격하며 대대로 선조의 원수를 갚는 내홍(內訌)을 거듭하였고 이는 명()이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따라서 여진을 누루하치가 여진 각부를 통일하여 정권을 수립하고 결국은 명을 제압하고 청()제국을 세우는 과정은 세계 역사상 드문 드라마틱한 곡절을 거쳐야 했다. 여진족에게 멸망당하는 명() 역시 그 가장 중요한 원인은 내부의 분열이었다. 무능한 황제들은 자신들의 측근인 내시에게 국방과 외교 전체를 위탁하고 있었고 그들 내시들이 군지휘관을 등용하고 감찰하는 목적은 오로지 뇌물 수수 한 가지뿐이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뇌물을 바치지 못한 일선의 유능한 지휘관들이 경질되고 체포, 처형되는 그 틈바구니를 여진이 파고들었다.

실제로 비록 명이 군사적으로 만주 일대의 주요 거점을 상실한 것이 사실이나 그들은 중국 대륙 전체로 진격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누루하치에게 조선과의 관계 유지는 정권의 승패가 달린 중요한 문제였고, 명과 여진 사이에서 실리, 균형외교를 추구하던 광해주의 실각은 국가적 위기일 수밖에 없었다.

인조 반정세력이 친명척금(親明斥金)을 대외 관계의 지표로 선명히 내세우면서 여진의 고민은 깊어간다. 그들은 결국 전방을 안정시킬 최선의 방법으로 조선과의 전쟁을 결심하게 된다. 이른바 선제공격이다.
문제는 조선이었다. 왜란을 겨우 끝내고 황폐해진 전후 상황 복구 조차 힘겨운 상황에서 북방의 떠오르는 강국 여진과 맞서 싸울 능력이 있을 턱이 없었다.

우리나라에 만약 털끝만큼이라도 방어할 만한 힘이 있다면 내가 무엇을 꺼려서 솔직함을 보이려는 아름다운 뜻을 따르지 않겠는가? 이 적은 귀신처럼 싸움을 잘하고 10만이 넘는 군사가 조금도 어려운 점이 없이 천하에 횡행하고 있는데 하물며 우리나라와 같이 여지없이 결단난 작은 나라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나는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서성이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광해1195)광해주의 이 고백은 당시 조선이 처한 실정을 웅변하고 있다.
그런데 반정 이후 조선은 아무런 군사적, 경제적 비축 없이 무조건 적인 반 여진 외교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후 여진과의 외교는 군사적 강압을 통하여 마침내 망국에 준하는 상황으로 몰려간다. 삼전도에서의 항복의식은 대책없는 이념정치가 어떤 결과로 결말지어지는 지를 보여주는 준엄한 역사의 교훈이다.

북한의 핵개발을 바라보며 오늘의 우리 국가 현실이 어쩌면 호란을 초래한 인조반정 세력의 낯익은 얼굴을 보는 듯 안까깝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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