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의 땅이름 -57)검은돌(黑石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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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의 땅이름 -57)검은돌(黑石洞)
  • 김추윤
  • 승인 2017.04.1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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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윤 신한대 중앙도서관장·논설위원
의정부 산곡동에는 거문돌이란 마을이 있다. 현재는 흑석동(黑石洞)이라고도 부른다. 산곡동은 191441일 일제가 전국의 행정구역을 통폐합할 때 내동면(內洞面) 산곡리(山谷里)와 별비면(別非面) 흑석리(黑石里)를 합병하여 별내면(別內面) 산곡리(山谷里)로 개칭하였고, 198041일 의정부시에 편입되면서 산곡동이 되었다.

이 때 옛 별비면 흑석리 지역이 자연마을로 되면서, 옛 이름을 따라서 흑석동(黑石洞) 검은 돌이 음운 변경되어 거문돌마을이 되었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양주목 조에는 내동면이 동쪽으로 관아와 가장 가까운 곳은 25리이고 가장 먼 곳은 30리이다. 원호는 154호이고 남자는 314, 여자는 354명이다. 그리고 별비곡면은 동쪽으로 관아와 가까운 곳이 30리이고, 가장 먼 곳은 50리이다. 원호는 490호이고 남자는 857, 여자는 1028명이 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별비곡면이 약 그 당시 2000명이 사는 아주 큰 면으로 나타났다.

산곡동 거문돌 마을 입구에는 열녀 안산 이씨와 평산 이씨의 정려문이 있다. 안산 김씨와 평산 신씨는 류씨 집안에 시집온 동서지간이었다.


안산김씨는 선조때 의금부사를 지낸 유영겸의 아내이고, 평산 신씨는 류형겸의 아우 가선대부 이조참판 류영순의 아내였다. 선조 때 의금부 경력을 지낸 유영겸(柳永謙)의 부인 안산 김 씨와 호조참판을 지낸 유영순(柳永詢)의 부인 평산 신 씨는 동서지간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편들은 선조를 모시고 의주로 피신했고, 두 부인은 강원도 금성현 산곳간으로 피신하다 왜군들을 만났다. 왜군에게 욕보일 수 없다 하여 김 씨는 은장도 칼로 자결하고 신 씨는 물속으로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그때가 선조 25(1592) 66일의 일이다. 선조는 이듬해에 두 여인을 쌍절이라 칭하고 정려문을 내렸다. 1603년 문신 이호민(李好閔)이 쌍절비(雙節碑)의 비문을 짓고, 김현성(金玄成)이 글씨를 썼다.


현재도 여기에는 선조25(1592)년 임진왜란 때 순절한 열녀 류영겸의 아내 안산 김씨와 류영순의 아내 평산 신씨의 쌍절정려비(雙節旌閭碑)가 함께 모셔져있다.


6.25
전쟁 후에 후손들이 이분들의 쌍절비(雙節碑)를 묘소에서 가져와 정려각 경내에 세웠다. 이 정려각에 함께 있는 충신 정려는 1637년 병자호란 때 순절한 철원도호부사 류질의 정려이다.


류질 공은 1637년 병자호란 때 순절하였는데 1639년 충신 이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후에 이조판서로 가증(加增)되었고 현종12(1671)년에 충신정려가 내려져 정려각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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