샛별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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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별의 반란
  • 김종보
  • 승인 2016.12.16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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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보 소설가

갑자기 북두칠성이 움직이더니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창밖의 바람이 거세게 불자 지영의 마음은 그 바람 앞에 놓인 등불이었다.

이때 또 다른 곳에서 가족들과 저녁 밥상을 마주하던 은미가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당황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가족과 불화를 겪던 지영이 끝내 가출했다는 소식이었다. 평소 고운 미소에 반짝이는 샛별처럼 함께 하던 친구다보니, 지난 번 햄버거가 먹고 싶다 했을 때 사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 친구가 때 이른 독립을 하고자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은미는 지옥 같은 가정을 탈출한 지영의 현실을 보고 남의 일 같지 않아 밥을 먹던 숟가락을 놓고 말았다. 오늘 날 청소년의 가출이 어제 일이 아니건만, 며칠 전 전해들은 이웃의 현실을 보고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빈부의 차가 불균형하게 이루어지면서 부영양화에 따른 그 이면의 어두운 골목에서 뒤척이며 들려오는 비명 소리가 메마른 회색 빌딩숲 사이를 휘돌아 나간다.

샛별은 새벽을 부르고 북두칠성은 언제나 독립하기를 원하지만, 아직 은미가 독립하기에는 너무 이른 중학생이다. 지영이 아빠의 하루는 늘 그랬다. 새벽의 별을 바라보며 일터에 나가 늦은 밤 초승달을 등에 업고 귀가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일상이었다.

한 때 등골페이스라 불리던 노스페이스바람을 잠재워 주지 못한 죄책감에 회한이 밀려온다. 그 순간 도막난 대동맥을 따라 지영의 옛 모습들이 스쳐 지나간다. 오늘 날 입시열풍에 따른 사교육의 배고픔과, 또 하나 만족하게 먹이지 못한 햄버거의 한이 한데 뭉쳐 샛별 같은 지영의 마음을 자극했으리라.

지금 이 시대의 씁쓸한 자화상이 되어버린 청소년들의 가출이 어찌 그 지영이 뿐이랴. 지영이 정들었던 가정을 탈출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로지 현실에 환멸을 느끼다보니 차가운 나라의 북두칠성처럼 스스로 홀로서고 싶어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러한 샛별들에게 정신의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함에도 마치 강 건너 불구경 대하듯 하고 있다.

그 위험한 거리에서 방황하는 샛별들에게 정체성의 이정표가 되어 주어야 할 거리의 간이역장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들에게 안도의 구명정 하나 제대로 던져 줄 그 의인은 어디에 있는가.


그 누가 저, 위험한 밥상다리 주인에게 일등지상주의의 바람을 막아 줄 것인가. 우리는 이들에게 탈출의 이름이 아닌, 찾아보면 이 땅도 진정으로 행복하고 평화로운 사회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험난한 생존경쟁 속에서도 무한한 가능성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의 무대를 열어 주어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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