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천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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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천 전투
  • 홍정덕
  • 승인 2016.12.1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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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1950625일 새벽 4시 북한은 옹진반도, 동두천, 포천, 춘천의 4개 주공로를 따라 일제히 남침을 감행하였다. 북한군은 개전 당일 동두천 포천을 함락하고 의정부 회랑(回廊)으로 몰려들었다.

이미 동두천, 포천 방어전에서 궤멸된 7사단을 대신하여 대전에서 급거 상경한 2사단 5연대는 금오리에서 포천에서 남하하는 북한군 3사단과 109전차여단을 저지하고 제18연대는 덕정 북쪽 투입하여 동두천에서 남하하는 적 4사단과 107전차연대를 방어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축석령 전투에서 포천방면 저지선이 무너지고 용암저수지로 우회한 적이 의정부의 북방을 위협하자 국군은 의정부를 포기하고 창동으로 철수한다. 이렇게 의정부는 개전 다음 날인 626일 오후 1시경에 함락되었다.

문제는 적이 운용하는 소련제 T34탱크였다. 당시 국군의 화력으로는 이 최신형 탱크를 저지할 수단이 없었다. 이제 서울의 함락이 경각에 달린 화급한 상황에서, 626일 오전에 열차 이동한 제25연대(연대장 김병휘 소령) 2개 대대를 의정부 남쪽의 백석천에 배치하였다.

북한군이 동두천, 포천에서 남하한 3, 4사단의 전열을 정리하여 남하하기 시작한 것이 626일 오후 5시경이었다.
예상대로 20여대의 전차를 선두로 적은 서울로의 진공작전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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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당 5~6발 정도의 탄알을 지급받은 국군 방어병들은 전투 개시 불과 수 분만에 탄환이 소진되었고 적의 탱크는 유유히 백석천 다리를 넘어 호원동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 때 다리 밑에 매복하였던 2.36인치 로켓 분대장이 5번전차를 파괴시켰으나 후속전차가 발사한 포탄에 맞아 전사하였고 뜻밖에 전차 1대를 잃은 북한군은 충격을 받았는지 더 이상 진격하지 않고 의정부 읍내로 되돌아갔다.

앞서 가던 전차 4대가 호원동 부근에 방어진지를 편성한 제16연대 2대대(대대장 소령 김헌)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친 데다가 후속전차가 없음을 확인한 듯 약 2km를 후퇴하여 노상에서 사격태세를 갖추고 후속부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이들 전차와 격전을 치른 제16연대 2대대는 많은 피해를 입고 분산되었고 이날 밤 백석교 우측에 배치된 제25연대 11중대장 문일수 중위는 전차 특공대를 편성, 지휘하여 노상에 정지 중이던 북한군의 전차 4대를 습격하여 그 중 2대를 파괴하는 큰 전공을 세웠다. 다음날 627일 새벽 북한군이 공격을 재개하자 제25연대는 결사적으로 싸웠으나 탄약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태릉, 능곡 등지로 분산 철수하였다.

백석천 전투는 이처럼 열악한 상황에도 오직 구국 일념으로 적을 저지하며 12시간의 귀중한 작전적 여유를 아군에게 제공하였고 이는 군 병력 재편과 정부 지도자들이 남으로 피난할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를 제공하였다.

백석천 전투의 현장에는 회룡역이 들어서고 그 일대는 말끔히 정비되었다. 이제는 그 누구도 이곳이 조국 수호를 위한 처절한 전투 전적지라는 사실을 모르게 되었다. 북이 원자탄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지금 상황에서 이곳 혈전의 현장에 작은 안내판이라도 세워놓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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