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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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 홍정덕
  • 승인 2016.10.1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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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곡물을 가루 내어 반죽한 후 압출기(壓出機)에 넣어 국수가락을 뽑아 삶아 건져 이를 여러 가지 국물에 말아 내거나 장()에 비벼 낸 음식을 모두 국수라 한다.

흔히 이 국수를 잔치국수라거나 장터국수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 이 음식은 집안의 특별한 날에 만들어 손님을 대접하거나 아니면 장터에 나가는 길에 돈내고 사먹는 특수음식’, 즉 일상적이지 않았던 음식이었던 듯 싶다.

하긴 우리나라에서는 고래(古來)로 밀이 아주 귀했다.봄철의 춘궁기(春窮期)를 넘기려면 보리농사가 급했기에 밀을 심을 만한 토지나 농력(農力)의 여유가 없기도 했거니와 우리나라의 밀은 가을밀로서 중국 화북의 봄밀과는 달리 가루내어 가공하는 과정이 많이 힘들기도 해서 밀의 생산량이 많지 않았다. 밀가루를 진가루라고 일컬을 만큼 귀한 식재료였다.

거기에다가 국물을 내는 소고기를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소는 농가의 귀물로 경전(耕田)의 기본이었기에 이를 함부로 잡을 수 없도록 엄한 법으로 규제하고 있어서 심지어는 사형에 처해질 수도 있는 중대 범죄행위였다. 이른 바 우금(牛禁)’이다. 따라서 소고기 국물에 만 밀가루 국수는 정말 귀하디 귀한 음식이었다. 지금도 혼기를 넘긴 처녀, 총각에게 혼사를 재촉하는 말로 항용 국수 언제 먹여줄래?”라고 말하는 덕담의 유래이기도 하다.

이처럼 귀한 밀가루 국수 대신에 서민이 먹었던 국수가 바로 메밀국수였다. 구황식물로 보급되었던 메밀은 박한 땅, 거친 기후에도 불과 3개월이면 결실하였기에 흔히 농사를 망친 땅에 대신 심어 허기를 면하던 곡물이다.


초겨울 즈음에 수확한 메밀가루로 국수를 만들면 글루텐 함량이 아주 적어 그야말로 찰기없이 툭툭 끊어지는 매가리 없는 국수가 되는데 이를 잘 익은 동치미 국물에 말면 이른 바 냉면이요 간장 양념에 비비면 그게 바로 막국수.

생일에 국수를 차려주는 것은 국수 가락처럼 자식의 명이 길기를 바라는 부모의 간절한 소망의 표현이요, 혼인 잔치자리에 국수를 대접하는 것은 가장 귀한 음식을 하객에게 내어 놓는 주인의 정성이었다.

어느새 일본식 소면이 들어오고 외국의 밀이 저가로 수입되는 한편 역시 일본에서 유래한 쪄서 말린 멸치 따위로 국물을 내는 저렴한 국수 조리 방식이 도입되면서 그 귀하디 귀했던 잔치국수는 싸구려 길거리 음식으로 전락(轉落)하고 말았다.

한편 국수와는 거꾸로 가난한 서민들의 구황음식이었던 냉면을 제대로 먹으려면 만원이 넘는 고액을 치러야 하는 고급 음식이 되었으니 말 그대로 상황은 거꾸로 되고 말았다.

명 길게 오래 살라는 어머니의 염원이 담긴 국수를 끊어 먹는 일은 금기 중에 금기였다.
이제부터라도 아이들 생일에는 피자를 시켜주지 말고 간절한 소망과 의미가 담긴 국수 한 그릇 정성껏 말아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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