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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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정덕
  • 승인 2016.09.1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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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논설주간·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내가 처음 커피를 마셔 본 것이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같은 학급의 친한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그 친구가 자기 어머니에게 엄마 커피 타다 줘!”라고 부탁하자 그 친구의 어머니는 어쩌지, 카네이션이 없는데라며 난색을 표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날 나는 커피라는 이름의 검고 쓴 음료를 처음 마셔보았던 듯 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카네이션이라는 명칭의 무엇인가를 커피에 함께 타서 마신다는 처음 알았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는 그 카네이션이 꽃이 아니라 커피에 첨가하는 커피크림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 하얀색의 액체 첨가물을 카네이션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 첨가물의 상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카네이션은 1958년 카네이션이라는 식품회사에서 기존의 용해가 잘 되지 않던 동물성 커피크리머에 식물성 유지를 첨가하여 개발한 것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커피크리머의 대명사로 불리다가 이후 이 식품 회사가 네슬레에 합병되면서 식물성 유지만으로 재개발된 커피크리머가 커피메이트라는 이름으로 새로이 보급되면서 회사도, 제품도 모두 추억의 한 장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세대는 당시 새로운 문화로 대두해온 다방 커피와 함께 이 카네이션을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명래 고약 등 몇 가지 소멸된 제품들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명될 예정이라는 뉴스를 접했다. 이명래는 충청도 공세리 성당에 다니던 천주교인으로서 현민 유진오 박사의 장인이기도 하다.

그는 충남 아산시 이원면 공세리에서 복음을 전하던 프랑스인 드비즈 신부의 심부름을 하면서 그로부터 종기에 특별한 효과가 있는 고약의 제조법을 배워 한약방을 열고 이 고약에 자기의 이름을 상표로 붙여 팔아 전국적인 유행을 일으켰다.

조선시대 전반을 통하여 가장 중요한 사망의 원인이었던 종기를 근원적으로 치료한 이 이명래 고약을 사용하지 않은 한국인은 없었고 전국 모든 집에는 이 고약이 필수 상비약으로 소장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 고약을 생산하던 공장은 문을 닫아 생산이 중단되었고 후손이 물려받아 경영하던 한약방 마저 폐쇄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가 온다. 떠나는 세대가 지녔던 기억을 다음 세대가 온전히 기억하는 것이 바로 계승이다. 역사는 연환되고 연결되어 있어서 인과가 응보로 바르게 적용되어야 공동체의 생명이 유지되는 까닭이다. 그리고 그래야 새로운 내일이 바람직하게 열리는 법이다 이를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 한다.

한 도시가 도시로서 제대로 기능하려면 꼭 갖추어야 할 시설 몇이 있다. 대학교, 도서관, 극장, 그리고 박물관이다. 의정부시에 박물관이 없다. ‘법고창신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시설이다. 의정부박물관의 설립을 간곡히 제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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