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다와 마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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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와 마가린
  • 홍정덕
  • 승인 2016.01.2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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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올 여름 미국 달라스 처형 댁에서 긴 휴가를 보낼 때의 일이다

가만 보니 모든 음식을 버터로 볶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물며 처형에게는 당장 비만이 걱정되는 사춘기의 손자가 있다. 화들짝 놀란 나는 당장 '한국마마켓'에 가서 여러 가지 식물성 기름을 사왔고 " 버터로 음식을 조리해서는 안 되며 몸에 좋은 식물성 기름을 써야한다며” 주어들은 식품상식을 죄다 동원해 난리를 피웠던 적이 있다.

며칠 전 TV에서 식품관련 방송을 시청했는데 주제는 몸에 좋은 기름은 어떤 기름인가 하는 것이었고 토론 전에 출연한 패널 중에 한 사람을 지명하여 준비된 여러 종류의 기름을 몸에 좋은 순서대로 선정하여 나열하는 내용이 있었다.

어느 정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그런 기준으로 지명된 패널이 기름을 추려 나열했다 당연히 식물성 지방을 우선하고 동물성 지방을 뒤에 놓는 그의 선정에 방송을 보는 나 역시 그의 선정에 동의하며 저것이 정답일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맨 앞이 올리브 올리브기름, 그 다음이 들기름, 참기름, 콩기름, 버터, 마가린의 순서였다 그런데 의외의 반전이 일어났다 문제를 출제한 전문가는 순위의 거의 맨 끝에 있는 버터를 들더니 이를 맨 앞에다 가져다 놓았고, 스튜디오는 이내 술렁이는 소음에 휩싸였다. 버터가 제일 좋은 기름이라니, 이 무슨 당치도 않은 억지란 말인가?

그 전문가는 버터를 최고의 기름으로 선정한 이유를 '안정성'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 방송을 보며 내가 마음속으로 부터의 진정어린 박수를 친 것은 버터가 좋은 기름이라는 선정이유가 아닌 다른 데 있었다 방송 말미에 의사인 한 출연자가 이런 말을 했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은 기름을 꼽으라면 저는 마가린을 꼽겠습니다”
의외였다 마가린이라니? 대표적인 불포화지방으로 전문가와 패널 모두가 가장 나쁜 기름으로 선정한 마가린이 제일 좋은 기름이라니?

“가난한 공무원이었던 저희 아버지는 한 달에 한번 돈이 생기는 날,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오늘 저녁에는 밥만 지어 놓으라’고 통고하셨고 그날은 어김없이 마가린을 한통 사들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식구가 둘러 앉아 흰밥을 푸짐하게 푸고 거기에 마가린을 듬뿍 얹어 조선간장에 비벼 먹었습니다. 그 고소한 맛을 저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게 제일 좋은 기름은 바로 마가린입니다”

그렇다! 그 말이 바로 정답이다! 나는 격하게 동감하며 마음속으로부터의 진정 어린 감동의 박수를 보냈다. 그래, 우리 모두에게 그런 잊지 못할 고소한 기억이 있었지!

그 고소한 기억은 영양도, 건강도, 지식도 모두 뛰어 넘는 행복이라는 기준으로 선정한 좋은 기름의 기준이었다.
문득 간절히 옛날처럼 촉수 낮은 저녁밥상에 식구들 모두 둘러 앉아 모처럼의 흰밥에 “빠다”를 비벼 먹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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