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상(李麟祥)의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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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상(李麟祥)의 귀향
  • 홍정덕
  • 승인 2015.07.17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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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양주역사문화대학 교수


이인상(李麟祥)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원령(元靈), 호는 능호관(凌壺觀) 또는 보산자(寶山子). 이경여(李敬輿)의 현손이다.

3대에 걸쳐 대제학을 낳은 명문 출신으로 1735년(영조 11) 진사에 급제하였으나 증조부 이민계(李敏啓)가 서자였기 때문에 본과에 이르지 못하고. 음보(蔭補)로 북부 참봉(北部參奉)이 되고, 이어 음죽 현감, 지리산 사근역(沙斤驛) 찰방을 지내는 데 그쳤다.

서출이었지만 명문 출신답게 시문과 학식이 뛰어나 당시 문사들의 존경을 받았고 후대의 문인과 서화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윤영(李胤永), 송문흠(宋文欽), 황경원(黃景源), 오재순(吳載純), 윤심형(尹心衡), 김무택(金茂澤) 등과 친하게 교제하였으나. 증조부가 서자인 까닭에 신분적 약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고,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검선도(劍僊圖)」는 서얼 출신의 불우한 심리를 표출한 작품으로 해석된다.

글씨 중 해서체는 안진경(顔眞卿)을 따랐고 특히 전서체는 마음 내키는 대로 호기 있게 써서, 당시에도 기(奇)하다고 하고 혹은 허(虛)하다고 하였다. 고전(古篆)을 능숙하게 구사하였고 당나라 이양빙(李陽氷) 서풍의 소전(小篆)과 한비(漢碑)에 근간을 둔 예서(隸書)에도 뛰어나 김정희(金正喜)는 그 문자향을 높이 평가하면서 “전각(篆刻)은 200년 이래로 따를 자가 없다.”고 상찬하였다.

특히 그의 곧은 지조와 강개한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소나무와 바위라는 문인적 소재를 즐겨 그려 「송하독좌(松下獨坐)」「수석도(樹石圖)」「설송도(雪松圖)」「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검선도(劍僊圖)」「수하한담도(樹下閑談圖)」「강상초루도(江上草樓圖)」등의 품격 높은 그림을 남겼다

그는 조선 후기 계급사회의 모순(矛盾)이라는 족쇠에 묶여 자신의 천재성을 제대로 펼쳐내지 못하고 시대의 변방을 떠도는 주변인(周邊人)으로 살았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그 역경을 치열히 삭혀내고 마침내 자신만의 독특하고도 아취(雅趣) 그윽한 예술세계를 구축함으로써 시대를 밝히는 밝은 등불이 되었다.

회암사지박물관에서 지금 이인상(李麟祥) 특별전이 열려, 그의 예술적 성취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 엄선되어 전시되고 있다 특별히 그의 대표작이자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검선도(劍仙圖) 앞에서면 시대의 모순에 온몸으로 저항하던 불우한 천재의 기상이 그대로 표출된 듯 숙연해 짐을 느꼈다.

양주에서 태어나 다시 양주로 돌아온 우리 고장이 배출한 한 예술가의 귀향!

의정부, 양주, 동두천을 통합하여 다시 옛 양주의 영역으로 되돌리자는 통합운동이 다시 공강대를 형성하고 있는 이즈음, 양주인 이인상이 그려낸 <눈 맞는 소나무>, 그 꼿꼿한 선비 작가의 청청(靑靑)한 자세를 한번 만나보는 것도 양주인으로서 의미 있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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