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시대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 변화
상태바
저성장시대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 변화
  • 안동규
  • 승인 2015.02.16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안동규 경민대 e-비즈니스경영학과 교수


정부가 올해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전망하는 가운데 소비심리는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소매지출 증가율은 1.6%에 불과했다.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마저 얼어붙어 소비시장에도 저(低)성장에 적응해야 하는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전망이 잇따른다.

소비 위축이 장기화하자 유통업계는 일본처럼 ‘소비를 멀리하는 소비자’가 한국에도 등장한 게 아닌지 경계하고 있다. 일본의 장기 불황기(1991∼2001년)에 10대 시절을 보낸 ‘혐(嫌)소비 세대’는 소득이 충분해도 소비에 좀처럼 나서지 않아 일본이 장기 불황을 극복하는 데 최대의 적으로 불렸다. 지금처럼 국내 백화점들이 세일을 해도 손님이 몰리지 않는 모습은 일본의 장기 불황 초기였던 1990년대 초와 닮았다.

유통업계는 국내 소비자들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고 말한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한국소비자들은 서비스를 누리려는 소비자로 대형마트에서도 ‘백화점식’ 서비스를 요구했다. 한국은 해외 유통업체의 무덤이었다. 그러나 최근 소비자들은 같은 제품이라면 서비스를 받지 않고 더 싼 가격에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2006년 6월 취항한 저가항공사 제주항공은 처음에는 ‘노(No) 서비스’를 내세웠다가 한국 고객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불만이 제기돼 중간에 간단한 식사나 삼각김밥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3년부터 점차 ‘노(No) 공짜 기내식’으로 선회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서비스가 없는 불편함보다 항공료가 싼 게 좋다는 소비자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주항공 비행기에서는 음식을 먹으려면 따로 사야 하고, 좌석에서 영화도 볼 수 없다. 하지만 이 항공사는 2006년 118억 원이던 매출이 2013년 4323억 원으로 급증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불편함 자체를 즐기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해태제과의 ‘허니버터칩’을 구하지 못한 소비자들은 일본판 허니버터칩으로 불리는 가루비사의 ‘시아와세버터’ 과자를 복잡한 과정을 거쳐 해외직구한다.

불편해도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열망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가격이 싸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 패션업체 관계자는 “요즘 줄을 서 있는 곳은 맛집 아니면 싼 곳뿐”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는 이유는 세대별로 다른 특징을 보인다. 20, 30대는 취업난, 전월세 상승, 미래에 대한 불안감 확산 등이 소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장년층은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 때문에, 50, 60대는 급격한 고령화로 인한 노후 준비 때문에 소비지출을 줄이고 있다.

한국의 소비시장은 1980년대 산업화와 1990년대 대중문화의 영향으로 생존을 위한 소비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변모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소비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소비를 단순히 ‘생존을 위한 지출’로만 보는 경우가 늘었다.

한국 경제 전반이 ‘축소 지향적’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가계의 포트폴리오가 조정되고 소비 규모도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순서를 밟을 것이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소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심어 줘야 ‘제로 소비’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

결국 새로운 틈새시장을 여는 전략이 필요하다. 가격 할인을 하더라도 ‘싼 가격·높은 가치·스마트한 소비’라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동안 유통업체들이 소비자에게 보이지 않게 가했던 불합리한 유통 비용을 줄이는 노력도 수반돼야 한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