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교사
상태바
폭력교사
  • 홍정덕
  • 승인 2015.01.26 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정덕 신한대 2캠퍼스 평생교육원 교무부장

어린이 보육시설의 교사가 김치를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린 원생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영상이 방송에 보도되면서 전국은 충격에 휩싸였다. 어떻게 저 어린애를 그렇게 무자비하게 때릴 수 있다는 것일까? 도대체 저 사람에게는 교사이기 이전에 인간성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법에 규정한 가장 강력하고도 준엄(峻嚴)한 엄벌에 처하여야 마땅한 일이다.

대저 부모가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을 <육(育)>이라하고, 스승이 제자를 받아들여 가르치는 것을 <교(敎)>라 한다. 제자가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이해하는 것을 <학(學)>이라하며, 배운 바를 스스로 익히고 체득하는 것을 <습(習)>이라 한다.

<교(敎)>라는 글자를 분석하면 ‘효(孝)를 행하도록 때려가며 강제한다’는 의미가 있다. <습(習)>에는 ‘마침내는 하늘을 자유자재로 나를 수 있는 경지에 이르도록 매일 매일(日) 날개 짓(羽)을 익힌다’는 뜻이 있다

결국 <교육>은 올바른 가치와 품성을 익혀 인간의 구실을 할 때까지 스승으로부터 배우되 회초리로 맞아가며 엄하게 훈육되어야 하고 배운 바를 완전히 자기의 것으로 하기 위하여 스스로의 오랜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3-4세의 어린이들이란 도대체 집중과 타협이 안 되는 막나가는 자아 모색의 시기에 있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들이다 그들은 <육(育)>의 대상이지 <교(敎)>나 <학(學)>, 또는 <습(習)>의 대상이 아니다 거기에 더하여 요즘의 부모들은 자신의 활동 시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 어린아이들을 시설에 위탁한다.

시설에서는 더 좋은 조건으로 더 많은 아이들을 수탁하기 위하여 교육의 대상이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이 아이들을 대상으로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여러 가지 소위 <프로그램>들을 개성을 무시한 채 일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프로그램의 성과를 가시적으로 추출해야하는 교사와 자신의 어린이가 남보다 뛰어나기를 바라는 택도 없는 기대를 시설에 걸고 있는 부모 사이에서 그들은 나이와 성장 발달 단계에 맞지 않는 성취와 성장을 이루어 내야하는 그야말로 힘들고 막중한 업무를 이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또래 무리에 섞여서 그들과 함께!

유대인들은 그들의 자녀가 8살이 되기까지 마음껏 놀게 한다. 그 때까지는 교육이 가능한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엇이가를 배우기에 합당한 시기가 되어서 그때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배우게 하는 것 그 지극히 정상적인 배려가 오늘날 유대인의 번영과 발전을 가져온 기본이자 기초가 되었다'

우리들도 전에는 그랬다 3-4살이면 엄마 품에서 응석부리며 가족의 귀여움을 받으며 자랄 때다 그들에게는 감옥이나 다름없는 교육시설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프로그램들을 강제 받을 시기가 결코 아닌 것이다. 마당에서, 골목에서, 이웃집에서 환한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건강하게 맨발로 뛰어 놀면서 그렇게 자라고 그렇게 성장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아이들의 행복과 정상적인 성장을 심각하게 고려하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아이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 그 교사를 결코 용서하지 말자 그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만반의 대책을 강구하자. 그러나 무엇보다도 개선책은 ‘과연 이렇게 하면 우리 아이들이 행복할까?’라는 고민을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