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의 땅이름-3)녹양역(綠楊驛)-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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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의 땅이름-3)녹양역(綠楊驛)-2
  • 김추윤
  • 승인 2014.11.1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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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윤 신한대학교 중앙도서관장



평구역은 조선 시대 경기도 양주에 속했던 남양주시 삼패동 평구마을에 있던 역이다. 평구역(平丘驛)은 고려 시대에는 남경(양주)에서 평창이나 봉화 방면으로 갈 수 있는 평구도(平丘道)의 중심 역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찰방(察訪)[6]이 소재하는 평구도의 중심 역으로서 한양(漢陽양근(楊根지평(砥平홍천(洪川)에 이어지는 역로와 평구역에서 가평(加平한양·양주(楊州포천(抱川영평(永平) 등에 이어지는 역로의 소관 11개 역을 관할하는 중로역(中路驛)이었다.

평구역은 다른 지역의 역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지방 통치를 위한 정령(政令)의 전달과 관리의 왕래 등 교통·통신 기구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평구도의 중심 역으로서 해당 역로망과 그 소속 역들을 관리 감독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고려사(高麗史)82, 병지 참역(站驛)평구도는 30개 소를 관할한다. 평구(平丘) 남경(南京), 봉안(奉安) 광주(廣州), …… 유동(幽洞) 감천(甘泉), 도심(道深) 봉화(奉化)”라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경기 양주도호부에는 역이 6이니, 청파(靑坡노원(蘆原영서(迎曙평구(平丘구곡(仇谷쌍수(雙樹)이다라고 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05(태종 5)에는 경기도관찰사의 보고에 따라 평구역승(平丘驛丞)을 다시 두었고, 1457(세조 3)에는 이조의 건의로 각 도 역의 관할을 조정하고 정역찰방을 두게 하였는데, 이때 평구역은 구곡역·쌍수역 등과 함께 경기·강원도 정역찰방 관할이 되었다. 그리고 1506(연산군 12)에는 평구역을 덕연(德淵) 옆으로 옮겨 설치하게 하였다는 기사가 있다.

평구역은 한양에서 춘천 등 관동(關東) 지방에 이르는 직로(直路)에 있으면서 이 역로망의 중심 역이었다. 역 내지 역참은 조선 후기에 들어 역마(驛馬)를 함부로 이용한다든가 역전(驛田)의 사유화 등으로 인한 폐단이 가중되어 그 기능이 마비 상태에 놓이게 되자, 명나라의 예에 따라 파발(擺撥)을 설치, 이와 병행하여 운영되었다.

평구역과 평구도는 다른 지역의 역들과 마찬가지로 1894(고종 31) 갑오개혁 때까지 존속하였다.한편 옛날에는 의정부4동 일대가 파발막리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시둔면 의정부리에 합병되면서 동네 이름이 사라졌다.

옛 기록에서 보는바와 같이 조선시대에 의정부에는 이미 녹양역, 두험천참 등의 역과 파발이 있어서 교통통신의 요지로 두각을 나타내던 곳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녹양동에는, 군마(軍馬)를 사육하는 목장이 있었다고 한다. 녹양동 들판에 있던 녹양평의 규모는 동서 7, 남북12리에 달했으며, 중군과 좌군의 말을 방목하던 곳이라한다. 이 녹양평에서 녹양리가 유래했다.

1914
년 일제의 행정구역 통페합시 녹양리, 유현리, 비우리와 입석리 일부를 병합하여, 양주군 시둔면 녹양리로 개칭하고, 1938년 양주면 녹양리로, 1942년에는 의정부읍 녹양리로 바뀌었다.

1964
58일 의정부시의 명칭에 관한 조례를 개정하여, 동년 61일 동제가 실시됨에 따라 녹양동이 되었다. 따라서 이 녹양동(綠楊洞)이란 행정명칭도 조선시대에 이곳에 있었던 녹양평이나 녹양역에서 유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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