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素服)
상태바
소복(素服)
  • 홍정덕
  • 승인 2013.10.18 17: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인은 본래 태양을 숭배하는 상고(上古) 이래의 정신적 전통을 가졌다
겨레가 숭배해온 태양(太陽)의 색은 ‘해색’으로 이 명칭이 ‘흰색’으로 변이(變移)되어 생명(生命)과 관련된 곳에는 모두 이 흰색이 쓰이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脈絡)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의 배내옷이 모두 흰색 천으로 만들어졌고, 기저귀의 색이 예외없이 흰색 단색(單色)이며, 아이의 백일상과 돌상에는 흰색 무리떡이 올라갔다.

죽은 이의 관(棺)이 흰색이며, 죽은 이의 수의(壽衣)가 흰색이며 사형을 당하는 사형수의 복장도 흰색이다. 당연히 상(喪)을 당한 가족의 복장인 상복도 흰색일 수밖에 없다. 이른 바 소복(素服)이다. 우리는 흰색 옷을 입고 태어나 흰색 옷을 입고 죽음의 길을 떠나는 태양족인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지인(知人)의 장례에 문상(問喪)을 가보면 가족들이 모두 검은 색 옷을 입고 있다.
오래 전에 정부에서 ‘가정의례준칙’이라는 것을 만들면서 전래의 굴건제복(屈巾祭服)을 없애고 간소한 복장을 하도록 강요한 이래 남자는 검은색 신사복에 상장(喪章)을 달고 여자는 흰색 소복을 입도록 규정하고 이를 강제한 바가 있었다.

이의 영향으로 남녀 공히 상복으로 착용하던 전통 상복은 사라졌으되, 소복의 전통은 그대로 유지하도록 하였었다. 그 결과 남자들은 검은색 신사복 위에 상장을 달고 건(巾)을 쓰며 행전(行纏)을 두르는 선에서 간편화된 상복을 입는 것이 상례(常例)가 되었고 여자들은 소복에 상장(喪章)을 머리에 꽂는 것으로 간편해 졌다.

그런데 갑자기 상을 당한 집의 여자들이 소복을 벗고 괴상한 디자인의 검은색 간편 한복(韓服)을 입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민족은 검은 색을 꺼려 의례(儀禮)에 사용하지 않았다. 검은색은 북방(北方)의 색이며 겨울을 상징하고 쇠망(衰亡)과 닫힘을 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서울 도성(都城)의 북문인 ‘홍지문(弘智門)’과 법궁(法宮)인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은 평소에 닫아걸고 열지 않을 정도였다 .

당연히 검은 색깔의 까마귀는 대표적인 흉조(凶鳥)였고 달이 뜨지 않는 검은 밤은 흉조(凶兆)가 깊은 기피의 대상이었으며, 심지어 저승사자가 입는 복장도 검은색 도포(道袍)였다 그런데 왜 요즘 들어 여자들의 상복인 소복이 없어지고 불길한 색인 검은색 생활한복을 상복(喪服)으로 입게 되었을까.

장례 풍습이 바뀌면서 이제는 대부분의 상가에서 상조(相助))회사를 이용하는 것이 그 이유이다. 장례식 전반을 상조회사의 규정대로 진행하다 보니 상가(喪家)의 접대 음식은 물론 장례 진행 절차 일체를 그들의 방식대로 따르고 종내는 관(棺)과 수의(壽衣)까지 그들 상조회사에서 공급하는 물품을 쓰게 되어 생긴 웃지 못할 풍습인 것이다.

소복을 사용하면 장례과정에 묻는 여러 오물을 세탁하기가 번거롭고 재사용하기가 때로는 불가능하므로 그들은 검은색 생활한복을 제공하는 것이다.

의례에 까다로운 오래된 집안에서 조차 이 막 되먹은 풍습을 별 거리낌 없이 수용하고 있다. 개탄(慨嘆)할 일이다. 고인(故人)을 보내는 애통함과 더불어 가장 정중하여야 할 장례에서는 우리민족 상고 이래의 정신적 전통인 정갈한 소복을 입어야 하지 않을까?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