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지슬’의 역사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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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지슬’의 역사적 의미
  • 제갈창수
  • 승인 2013.06.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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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창수 경민대학교수.철학박사


헐리우드 상업주의에 반발하고 제한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지향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립영화 선댄스영화제의 해외극영화부문에서 심시위원 전원 찬성의 대상을 올 1월에 ‘지슬’이란 영화가 받았다고 한다.

독립영화는 열악한 제작환경과 저예산으로 만들어야 하는 여러 제약을 감수해야하는 어려움이 뒤따르고 오직 감독의 열정만으로 만들어야 한다고들 한다. 특히 ‘지슬’영화는 제주도 문화예술인들과 누리꾼들의 모금으로 약 1억 50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 제작됐다고 하니 상업성 영화 제작비에 비하면 미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해에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에 이어 오멸 감독의 ‘지슬’의 수상 소식은 ‘강남 스타일’못지 않게 우리의 영화예술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렸다.

우리사회에서 지금까지 독립영화를 감상한 관객 수가 13만명 이상의 숫자를 넘긴 영화는 ‘지슬’이 처음이다. 다양성 영화인 독립영화에 왜 그 많은 관객이 몰렸을까? 그것은 아마도 제주도에서 1948년 11월에 발생한 제주 4.3사건의 한의 역사를 고통 받고 죽음에 이른 평범한 민중의 삶속에서 희망과 화해와 용서를 읽어내려고 했던게 아닌가 싶다.

제주도 토박이인 오멸 감독은 1948년 겨울 제주 서쪽‘큰넓궤 동굴’로 피신했던 마을주민들에게 닥친 비극적 상황에서 작품의 소재를 얻었다고 한다. 이 영화의 구성은 독특한 제사의 형식인 1장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부르는 신위 2장 영혼을 모시는 장소 신묘 3장 제사음식을 나눠 먹는 음복 4장 제사에 사용한 지방을 태우는 소지로 돼있다. 이것은 아마도 죽은 영혼을 기억하고 넋을 기리고 위로하려는 위령제와 같다.

영화는 “해안선 5km 밖 주민들은 폭도로 규정하고 모두 학살하라”는 미군정의 소개령에서 시작한다. 당시 중산간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이유도 모른채 산속으로 피신하게 된다 당시 미군정 정보보고서에도 “9연대는 중산간 지대에 위치한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명백히 게릴라부대에 도움과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가정아래 마을 주민에 대한‘대량학살 계획(program of mass slaughter)'을 채택했다”고 한다.

큰 넓궤 동굴로 피신한 마을 주민들은 죽음이 코 앞에 다가왔는데도 오히려 천진난만하게 ‘감자가 참 달다’‘우리네 암퇘지와 당신네 수퇘지를 접붙입시다.’‘자네는 마음에 둔 처녀가 누구야’‘돼지가 굶으니 밥을 주러 가야지 돼지도 생명인데’라는 시시콜콜한 대화를 하면서 내일이면 동굴을 나가겠지라는 희망을 말하는 마을 주민들이 영문도 모른채 죽임을 당하는 비극적 상황은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며 슬픔을 느끼게 한다.

마치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격처럼 무고하고 선량한 수많은 민중들의 삶을 송두리째 뽑아버린 것이다. 이것은 국가권력의 무분별한 폭력성의 결과이다.

조선중앙일보 1949년 4월 13일자에 “....형용이 말이 아닌 남녀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내려온 것이 2800여 명인데 이 사람들을 다 넓은 공청에 칸을 나눠서 거쳐시키며 하루 두끼씩 밥을 먹이는데 반찬이 없음을 물론이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한 그때 제주도에 있던 스위니(Austin Sweeney)신부는 서울의 한 신부에게“만약 여기가 문명화된 나라라면 광범위하게‘제주도를 돕는’ 계획을 당장 실시할 것이다. 주민들은 짐승같이 살고 있으며 평균 하루에 고구마 한 개를 먹고 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고 한다.

오멸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작품 제작 동기를 밝힌 바 있다. 그는 제주 4.3사건을 이념의 문제가 아닌 사람의 문제 사람의 고통의 문제로 보았다. 때문에 누구의 시시비비를 굳이 따지려는 입장을 배제하려했고 4.3 사건을 이념화시키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죽이는 자와 죽임을 당하는 자와의 화해를 원한다면 잔혹한 살인자의 대명사인 김상사를 안아야 한다고 했다. 잔인한 행동을 서슴치 않은 그는 살면서 지옥을 경험한자이므로 영혼의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그가 죽어서도 지옥을 체험하라고 말하는 것은 산자의 오만한 태도이라고 하면서 ‘지슬’ 영화를 통해서 돌아가신 분에게 함께 바친다고 생각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또한 영화를 본 후에 분노를 느끼지는 않기를 바라며 기존의 역사위에 성숙한 역사를 쌓아가야 하는데 분노의 감정으로 인해 간극이 더 벌어지는 건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직도 민간인 사찰 국정원의 정치 개입 등과 같은 국가권력의 무분별한 폭력성은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끝나지 않은 세월’인가보다 ‘지슬’의 역사적 의미는 자유의식의 진보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것에 이정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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