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는 물 속의 개구리’ 환경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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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 물 속의 개구리’ 환경문제
  • 남궁랑
  • 승인 2013.05.31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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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랑 경복대학교 교수


옛날 조선시대 충청도의 한 문하생이 반딧불을 등불삼아 주야로 공부한 뒤 짚신 10켤레를 짊어지고 몇날 며칠을 걸어서 마침내 한양에 당도하니 이미 과거는 끝나고… 요즘은 제주에서 아침을 먹고 비행기에서 편히 앉아 신문을 읽다가 서울에서 점심을 먹는다.

그런데, 마트에서 야채를 구입할 때는 잔류농약을 걱정해야 하고, 신축된 새 아파트에서는 새집증후군을 걱정해야 한다. 좀더 멀리보면, 온실가스에 의한 지구온난화와 생태계 파괴에 따른 오존층 붕괴 등이 미래 언젠가는 지구의 ‘종말’이라는 단어를 걱정하게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인류에게는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높은 생산성에 의한 소비경제가 발달했고, 소비경제의 발달은 궁극적으로 자연환경의 파손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자연환경이란 인간의 활동에 영향을 주는 동시에 거꾸로 영향을 받는 공기, 흙 등과 같은 요소들로써 작게는 우리집, 크게는 지구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본래 인간을 포함한 지구 생명체들은 자연으로부터 먹거리와 기타 생존에 필요한 물질을 공급받아야만 하며,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환경이 손상을 입게 되지만 복합적인 생태계의 작용에 의해 복구, 유지되는 것이 대자연의 법칙일 것이나 이제는 환경트러블이라고 해야할 정도로 해가 갈수록 환경손상과 자연복구사이에는 그 불균형이 더 커져가고 있다.

이 심화된 환경문제는 이제 변형이전의 본래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성(non-reversibility)을 갖게 됐으며, 한 때 찬란했던 고대 문명의 발상지였으나 지금은 산업화로 오염된 황하의 중금속 모래먼지가 한반도를 오염시키게 되는 ‘그 누군가의 문제(somebody else's problem)’로 까지 확대되고 있다.

산하의 무차별적인 난개발과 인간의 이기적인 삼림벌채는 장시간에 걸쳐 생태계 및 지구의 변화를 촉진시킴으로써 우리의 후세들이 누려야 할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환경에 대한 세계적 관심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바, ‘Green Peace(1971, 27개국 450만회원)나 ‘Friends of the Earth(1969, 51개국 476만회원)’ 등이 국제적으로 큰 활동을 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1960~70년대에는 경제성장이라는 논리에 밀려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하였으나 이후 계속된 산업화정책에 따라 그 부산물로써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면서 관심을 갖게 돼 1980년 7월에 처음으로 환경문제를 총괄할 ‘환경청’이 발족했고, 녹색연합과 유엔환경위원회 등의 환경단체들이 활동해오고 있다.

이처럼 환경문제는 후기산업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중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으며, 우리세대들 보다 후손들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회 각 분야에서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환경문제는 정부나 환경단체의 힘만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으며, 이 지구상에서 숨쉬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참여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안전은 100에서 1빼면 99가 아닌 0’이라고 하지만, 환경문제는 소위 ‘끓는 물속의 개구리’처럼, ‘100-1은 99요, 99-1은 98’로서 언젠가 0이 된다면 더 이상 인류의 설자리는 없게 된다.

부디, 인류가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 즉, 우리들 세대 뿐 아니라 이어지는 후손들 모두에게 행복한 삶이 될수 있도록 지금부터라도 주변 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여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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