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공공교육은 어디쯤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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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공공교육은 어디쯤 있을까?
  • 신희주
  • 승인 2013.03.18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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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기다. 해가 바뀌면서 진급하는 아이들을 둔 학부모들은 더 분주해진다. 도보로 통학하기가 어려운 지역의 아이들은 등·하교를 위해 차량을 운행하는 학원을 알아보고 등록한다.

도보로 통학이 가능한 지역에 거주하는 아이들이라도 방과후 또래가 모이는 학원을 찾기 마련이고, 또 대낮이라도 아이들이 걸어 통학하기에는 불안한 사회환경의 공감은 학원차량이라도 찾게 되는 듯하다.

심지어 너무 이른 시간에 등교하면 위험하니 제 시간에 등교해 달라는 공문을 학교로부터 받으니 부모들이 아이들의 등·하교를 걱정하는 것은 기우가 아니다.

정규수업을 마치고 방과후프로그램이 잘 구성된 학교가 아닌 경우에는 대체할 수 있는 전문기관을 찾는 것이 또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싶다.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종이 접기만 하게 된다는 사실을 안다면 시간을 짜 학원을 돌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어느 학교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선행학습을 한 것을 전제로 수업을 진행하기도 해서 사교육을 하지 않으리라 결심했던 부모의 다짐은 보통 독하지 않고서는 지켜내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부모의 다짐 때문에 당장 아이는 학교에서 자신은 열등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사교육이 과하다고 부모의 의식에만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기에는 뭔가 부족함이 있다.

초등학생을 둔 부모들을 통해 다양한 학교생활의 이야기를 듣는다. 구태에 젖은 선생님과 의욕에 가득 찬 선생님, 그에 따라 아이들이 받게 되는 영향들. 고발을 하고 싶은 상황에서조차 늘 볼모는 아이들이 될 수 있어 전전긍긍하는 부모의 심정. 친구들 사이의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 그것이 확대돼 부모의 다툼이 된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도서관이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어느 초등학교에서는 도서관에서 조용히 좀 해 달라는 항의 전화 때문에 아이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주의를 준다는 소리까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사건도 포함된다.

공식화 돼 있지 않은 부모들의 모임이 반강제에 의해 만들어지고, 수시로 걷는 회비와 모임을 거부하려고 해도 아이들이 왕따가 될까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한다는 후문. 학교에 청소하러, 통학안전지도 하러, 무슨 행사를 위한 지원을 하기 위하여 자주도 학교로 호출되는 엄마들을 만난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입학을 하게 된 부모를 위해 초등학교 선생님이 특강을 한 적이 있다. 두 시간이 넘는 특강의 내용을 요약하면 학교는 유치원과 달라서 어머니가 도와줘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보통 한 반에 30명 정도되는 아이들을 일일이 다 봐 줄 수가 없기 때문이란다.

현실이 이해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으나 이런 발언의 바탕에는 유휴인력으로서 주부의 노동력을 공짜로 간주하는 의식을 발견할 수 있어 몹시 언짢았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항의의 결과는 고스란히 아이가 볼모가 되는 상황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시장논리에 의해 각 가정이 부담을 지고 있다.

공교육의 영역에서조차 대한민국은 엄마 없이는 잘 돌아가지 않음을 재확인한다. 그럼에도 아무 문제의식 없이,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심지어 당당하기까지 한 선생님과 학교의 의식이 좀 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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