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사의 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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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의 가위
  • 홍정덕
  • 승인 2013.01.15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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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덕 한북대학교 평생교육원 교무부장

도꾸가와 시절부터 일본 상계(商界)를 장악해 온 오사카 사카이의 상인들은 자신의 아들을 친한 친구가 경영하는 상점의 급사(給仕)로 보내는 관습이 있었다.

친구의 아들을 급사로 받은 상인은 청소부터 시작해서 물품의 진열과 정리, 구매와 판매, 장부 정리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기획에 이르기까지 상점 경영의 전 과정을 그야말로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그 훈련과정에는 당연히 질책과 책임 추궁은 물론 때로는 매질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단이 동원되는 데, 극기와 인내가 없이는 감당할 수 없는 엄한 훈련이었다.

그 힘든 훈련과정을 겪는 동안 상점의 주인은 자신이 맡은 친구의 아들이 과연 상인으로 성공할 자질과 능력이 있는지를 엄격히 판정하고 합격점을 받으면 그 후에 자신의 딸과 결혼시켜 상점을 물려주었다.

물론 자신의 아들은 역시 자신이 친구의 아들을 맡아 훈련을 시킨 것처럼 또 다른 친구 누구인가에게 맡겨 역시 같은 훈련 과정을 겪게 했다. 물론 자신의 아들이던 친구의 아들이던 훈련과정에서 그가 훈련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거나 상인으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판정되면 가차없이 탈락시켜 쫓아내어 버렸다.

이같은 엄격한 훈련 시스템 덕분에 오사까 상인들은 튼튼한 체질을 확립할 수 있었고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일본의 유명한 상인그룹, 히다치, 미쓰비시, 미쓰이 같은 세계적인 재벌이 나타났고, 무려 1600년간 지속되어 내려 온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회사 곤고오구미(金剛組)가 유지되어 왔던 것이다.

교육이 무너지고 있다.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인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데에 아무도 이의를 말할 사람은 없다. 그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의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교육 현장은 개성과 인권의 존중이 지나쳐 오히려 무질서와 방종으로 치닫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학교를 운영하고 아이들을 가르칠 돈이 없는가? 학교의 시설이 남루한가? 교사의 학력이 모자라는가? 우리의 교육 현장이 왜 이렇게 되었는가?

전선의 포성이 들려오던 사변 때도 우리는 소나무 가지에 칠판을 걸어놓고 아이들을 가르쳤고, 엄동설한이면 책, 걸상의 한 모퉁이 한 모퉁이를 뜯어 난로를 지펴가며 우리는 진지한 수업시간을 유지했었다. 내가 중학교 입시를 치르는 동안 우리 아버지는 헤진 신사복으로 정장을 하신 채 학교 대문에 엿뭉치를 붙여 놓고 간절한 마음으로 합격을 기원했다.

그때의 그 수업이, 그 열정이 오늘날의 풍요를 연 열쇠였음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오늘에도 역시 더욱 더 거세어지는 세계 경쟁에서 이기는 힘은 오로지 교육에 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아이들을 바르고, 정직하고, 능력 있는 내일의 일꾼으로 키우는 방법이 교육 하나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이제 개성존중과 학생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조장(助長)되는 교육 현장의 무질서는 마땅히 걷어내어 져야한다. 바로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그 아이들의 미래와 건강한 성장을 위해서! 나무에 가위질을 하는 것은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과수원의 주인들이 서로의 과수원을 바꾸어 전지(剪枝)작업을 하는 이유를 아는가? 풍요로운 결실을 위해서는 과감하게 가지를 잘라내고, 다듬고, 버려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나무가 건강하고, 제대로 꽃이 피고, 튼실한 열매가 맺힌다.

쓸모없는 그루를, 낡은 가지를, 너무 많이 피고 열린 꽃과 열매를 따주고 잘라주어야 한다. 그래야 나무가 튼튼해 진다. 지금이야 말로 정원사의 가위를 교사들에게 쥐어 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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