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투표하지 말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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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투표하지 말아주십시오.
  • 신희주
  • 승인 2012.12.0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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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주 논설위원

연세 높으신 분과 대화를 나눈다. 숨이 막힌다. ‘나는 당신과 생각이 다릅니다’라는 말을 하면 젊은 놈의 버릇없는 말대답을 넘어서 졸지에 종북좌파, 빨갱이가 되어버리는 것이 요즈음이다.

사람들의 생각과 입을 닫고 통제하려는 어떤 조직적인 움직임을 발견하고 또 그에 맞춰 적응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우울하다. 이런 움직임의 끝은 민주주의 가치와는 거리가 아주 먼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배운 민주주의는 ‘의사 결정시 시민권을 가진 모두 또는 대다수에게 열려 있는 선거 또는 국민 정책투표 등의 방법을 통하여 전체적인 구성원의 의사를 반영, 실현시키는 사상 및 정치 사회체제’이다.

일반적으로 국민 개개인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주권을 행사하는 이념과 체제라고 표현된다. 사실을 왜곡하고 여론을 조장하고 표현의 자유를 틀어막는 행위는 주권을 행사하는 국민의 무능력을 생산한다.

당신의 뜻을 거스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정의(定義)와는 거리가 있음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사회의 스승과 어른으로서 존경했던 당신의 오늘날 말과 행동이 과거와 같지 않음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편집된 역사적 객관성과 권위를 가장해 스스로 모순에 빠져있음을 너무도 명확하게 확인하는데도 당신은 여전히 부끄럽지 않다 말한다.

다양성을 상실한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으며 이미 전제정치에 익숙한 국민에게는 독재만이 심리적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다양한 것은 어지럽고 복잡하고 불확실하고 시끄러운 것이라 불편하기 때문이다.

영화 ‘남영동 1985’의 상황 속 선의의 피해자는 가엾지만 나만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나만 피해갈 수 있는 세상이 얼마나 내게 가능한 것일까? 그런 생각으로 선택하여 만들어온 세상을 고스란히 손주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것일까? 손주들에게도 괜찮을 것이라는 보장은 어떻게 확신하는가?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권리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겠다. 나는 당신의 사상에 반대한다. 그러나 당신이 당신의 사상 때문에 탄압을 받는다면 나는 당신 편에서 싸울 것이다.’ 이블린 홀(Evelyn Hall)이 볼테르(Voltaire)의 관용에 대한 태도를 요약한 말이다.

요즘 이 말을 떠올리며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투사 아닌 투사가 되어 가는 것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가장 안전한 방법은 사회적 연대를 통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옳다고만 목소리 높이는 것을 멈춰주십시오. 당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고 종북좌파로 매도하는 매카시즘을 그만 하십시오. 당신을 부끄럽게 느끼지 않도록 제발 참아주십시오. 적어도 어른이시라면 다음 세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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