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오늘 만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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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오늘 만든 것
  • 신희주
  • 승인 2012.10.19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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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주 논설위원

가끔 아빠 혹은 엄마라고 불리는 자들이 한심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문제라고,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고, 아이들에게 최선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그들의 일상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겪게 되는 문제해결방식은 개인의 능력으로 대비하는 방식을 선택하기에 배타적인 경쟁을 강요한다. 그러나 개인이 대비할 수 있는 범위는 얼마나 제한적인가? 사회구성원 전체가 부담을 나누어 함께 방안을 모색하는 것보다 더 단단한 방법을 찾을 수 있는 개인은 극히 일부분이다.

그리고 그 역시 세대를 거듭해서까지 완전할 수는 없다. 마치 죄수의 딜레마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이 두 죄수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선택임에도 연대를 놓치고 최악의 선택을 하게 된 죄수들과 마찬가지다.

건강한 먹거리여야 한다면서도 푸드 거리가 긴, 때론 가격만 낮은 생산물을 선택하며 경제적이라고 생각하고, 오염 없는 환경에 살기를 바란다면서 경제성장의 허울아래 비교적 오염이 덜 된 지역에 들어가 오염생산시설을 설비하고 문제의식도 없다.

경제적 이득을 노리며 나와 연관 있는 지역의 개발을 희망하며 부동산 인플레이션에 동참하고, 귀찮고 소심해 보인다고 일회용사용이 넘치고 여전히 출퇴근을 위해 차량을 움직인다,

힘이나 연비만을 염두에 둔 ‘경제적’인 선택을 하며, 아이들이 불행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교육비 부담으로 허리가 휜다면서도 그만두지 못한다.

밤낮 아이들을 위해 일한다면서도 정작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에는 늘 ‘다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고 ‘가족에 대한 봉사’라고 말하며, 아이의 행복을 위한다면서도 보다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세뇌하며, 다양한 부분에 관심을 갖길 원하기보다는 당장 조금은 더 잘하길 바라는 욕심에 책상에 앉으라고 언성을 높인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스스로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으며 합리적이라고 자위하며 정치인이나 사회구조를 탓하고 있지 않은가.

‘사회’는 각 개인이 구성원으로 모여있는 집단임을 아주 자주 잊고 있는 듯하다. 모든 사람들이 투사가 돼야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작은 행동이 자신의 생활에 이르러서는 작은 생활의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활에서 그 어떤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이웃들의 소박한 실천에 핀잔이나 주며 그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아이들의 눈은 생각지도 못한다. 그러면서 바뀌어질 미래에 대해 운운하는가.

조금은 귀찮고 번거로운 실천들이 모여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낸다. 당신이 조금만 더 배려하는 것으로 당신의 아이들은 조금은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는 희망을 갖는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다. 그저 순간 점에 이르러 지나칠 뿐이며, 우리의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잘 이용하고 돌려줘야 할 것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를 희망하고 그 세상을 위해 어떤 방법이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미래 세상을 위해서 도움이 되지만 조금은 덜 편한 방법이 있다면, 조금은 덜 편한 방법을 선택하는 실천을 ‘내가’ 해 주길 바란다. 가족을 포함한 주위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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