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德)을 기린 것일까? - 비석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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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德)을 기린 것일까? - 비석거리
  • 논설위원 신서진
  • 승인 2011.06.2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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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제주도에 다녀왔다. 육지와 떨어져 있어 독특한 섬 문화를 갖고 있는 제주는 언어마저 방언의 수준을 벗어나 통역 없이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땅이름도 마찬가지라 ‘오름(산)’, ‘바릇(바다)’ 등의 말을 듣고 쉽게 그 뜻이 무엇인지 알아 차리기가 쉽지 않다. 거리 이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도로를 달리다 보니 ‘비석거리’라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이 곳에도 비석거리가 있나 보다.

어디를 가든 ‘비석거리’ 혹은 ‘비선거리’, ‘비성거리’라는 지명을 그리 어렵지 않게 봤던 것을 기억한다. 포천, 남양주, 서울 송파구, 수원, 김포 등 도로를 달리다 보면 쉽게 만났던 것 같다. 가까이 경기도 양주에도 ‘비석거리’가 있다. 비석이 얼마나 많은지 직접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땅이름이 그리 지어진 이유는 비석 때문일 것이다.

비석거리의 비석은 대부분이 송덕비다. 지방관리나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선비의 치적을 기려 마을 주민들이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은 기득권자가 자신의 권위를 위해 백성들에게 억지로 강제한 경우가 많아, 권력 등을 과시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경기도 양주는 세조 12년에 목으로 승격이 되어 387명의 목사가 파견되었다. 한양과 가까운데다가 요충지이기도 해서 당쟁으로 중앙이 들썩일 때마다 자리바꿈이 심한 곳이었다. 어떤 경우는 재직기간이 2일인 목사도 있다고 하니 발령 받고 양주로 오는 길에 짐도 풀어보지 못하고 되돌아 갔을 것이다. 부임해 지역 상황을 파악하고 터줏대감들 문안 드리고 나면 몇 달이 지날 것인데, 얼마나 많은 목민관이 선정을 펼칠 수가 있었을까?

딱히 특별한 공덕이 있어 자발적으로 갹출하여 비석을 세운 것이 많지 않았던 만큼 비석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그들이 세운 비석이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코를 풀고, 침을 뱉고, 돌을 던지거나 욕설을 하며 지나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생겨난 또 다른 말이 비석차기, 비사치기, 비새치기, 비껴치기, 마네치기, 망깨까기, 말차기, 강치기 등이다. 아이들의 놀이로 바뀌어 전해지면서 그 유래가 비석거리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기 쉽지 않을 것이다.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나는 재임기간의 치적을 위해 일부러 일하지 않은 것이 유일한 치적이다.” 표를 위해 눈에 보여지는 이익집단의 사업만 진행하는 정치인. 내 아이들을 위해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 있음을 알면서도 당장의 안락함을 선택하는 유권자. 통치방식이나 목민관을 바꿀 수 없었던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 우리는 민주주의사회에 살 자격이 있는 것일까?

비록 나는 편안하였으나 후세에 비석치기 당하는 신세가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은 모두의 공감을 얻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부끄럽지 않도록 명분과 신념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는 당신은 어른으로 존경 받고 기억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뒤에서 돌을 던질 것이 아니라 세상을 견뎌내며 유지하고 변화시키는 것도 우리 보통사람들의 몫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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