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5월이 되면 종합소득세 신고가 시작된다. 예전 같으면 세무서 민원실은 신고서를 들고 찾아온 사람들로 붐비고 세무대리인의 사무실도 분주했다. 그러나 요즘엔 홈택스에 접속하면 상당 부분의 자료가 이미 채워져 있고 시중의 세무신고 앱은 몇 번의 클릭만으로 환급 가능성까지 알려준다.
납세자는 세법 조문을 일일이 찾아보지 않아도 되고 복잡한 신고 절차를 과거보다 훨씬 쉽게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납세자는 신고 대상 여부, 신고 방법, 공제와 감면 요건 등을 AI에게 묻고 답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세법을 잘 모르는 납세자 등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특히 영세사업자, 농업인, 프리랜서, 고령 납세자처럼 세무 정보 접근성이 낮은 사람들에게 AI 상담은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여기까지는 분명 긍정적인 변화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AI가 단순히 상담을 도와주는 수준을 넘어 납세자의 거래 패턴을 분석하고 탈루 가능성을 예측하며 세무조사 대상 선정이나 체납관리, 신고 검증에 활용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금을 제대로 걷기 위해 국가는 많은 자료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국가가 많이 안다는 것이 곧 정당하다는 뜻은 아니다.
세금 신고 과정에는 개인의 가장 민감한 정보가 모인다. 소득, 금융거래, 카드 사용액, 의료비, 부동산 거래, 가족관계, 사업 매출, 비용 지출, 자산 이동 등이 모두 세무자료 속에 들어간다. 이 자료들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한 사람이 어떻게 벌고 어디에 쓰며 어떤 경제생활을 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생활의 기록이다. 세무자료가 곧 개인의 경제적 초상화인 셈이다.
그런 자료를 AI가 분석하기 시작하면 세무행정은 훨씬 정교해질 수 있는 동시에 국민의 사생활은 훨씬 더 좁아질 수 있다. 국가는 탈세를 막는다는 이유로 더 많은 데이터를 요구할 수 있고, AI는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위험 납세자를 분류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은 자신이 왜 의심받는지 어떤 기준으로 분류되었는지 어떤 자료가 사용되었는지 알기 어려울 수 있다.
2026년 1월22일부터 시행되는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기본법」은 AI 산업의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을 함께 목표로 한다. 세무행정 AI가 곧바로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납세자의 재산권과 개인정보, 행정절차상 권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에 준하는 신중함이 필요하다.
AI 행정의 가장 큰 위험은 ‘보이지 않는 판단’이다. 세무공무원이 판단하면 최소한 담당자와 절차가 보인다. 그러나 알고리즘이 판단하면 그 과정은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어떤 납세자가 세무조사 대상이 되었을 때 ‘AI가 그렇게 판단했다’는 말만 들을 수 있다면, 그것은 설명이 아니라 책임 회피가 될 수 있다. 납세자는 국가의 판단에 승복하기 어렵고, 세무행정에 대한 신뢰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물론 AI 세무행정을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설계된다면 AI는 조세 정의를 세우는 중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성실신고를 돕고 지능적 탈세를 찾아내며 세무공무원의 단순 업무 부담을 줄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 문제는 AI를 쓰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어떤 원칙 아래 쓰느냐이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민감한 과세 정보가 과도하게 모이고 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알고리즘 판단이 사람의 판단을 대신하며 탈세 방지라는 이유로 국민의 경제생활 전반이 들여다보이는 사회가 된다면 그것은 혁신이 아니라 감시사회에 가까워진다.
따라서 AI 세무행정에는 분명한 원칙이 필요하다. 즉 AI는 보조자여야지 최종 심판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세무자료 근거에 대해서 이전보다 더 쉽게 납세자에게 설명받을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고 세금 데이터의 사용 범위도 보다 엄격하게 세무행정에 국한되어야 한다. 이외에도 고령자 등 디지털 약자를 위한 사람 중심의 보완 장치가 필요하다.
AI가 세금을 걷는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앞으로 신고서는 더 자동으로 채워질 것이고 세법 상담은 더 빠르게 이루어질 것이며 탈세 위험은 데이터가 먼저 찾아낼 것이다. 국가는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세무 정보를 처리할 수 있고 납세자는 더 편리하게 신고를 마칠 수 있을 것이다.
AI가 아무리 똑똑해도 세무행정의 마지막 기준은 사람이어야 한다. 기술은 세금을 걷는 도구일 뿐, 국민을 감시하는 눈이 되어서는 안 된다. 편리한 세무행정이 감시사회로 흘러가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AI 세무행정 시대에 국가가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