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의 땅이름-80)청풍정 터
상태바
(의정부의 땅이름-80)청풍정 터
  • 관리자
  • 승인 2018.04.02 0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추윤 이학박사·前 신한대 중앙도서관장·논설위원
의정부시 장암동 수락사 입구에는 청풍정이 예전에 있었다. 지금 청풍정은 없어지고 주춧돌만 남아있다.

주츳돌의 크기는 높이 90cm, 아랫 폭 60cm, 위 폭 38cm 정도이며 모두 4개로 되어있다. 주추 간의 거리는 가로 2.2m, 세로 2.4m인 것으로 보아 정자의 평면적은 1.6평 정도로 작은 정자이다.

청풍정(淸風亭)은 노강서원(鷺江書院) 앞에 있는 정자로 매월당 김시습이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공부하다가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육신의 시신을 거둔 후에 21세 때인 1455(세조 1)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인 계유정난 소식을 듣고, 3일간 통곡을 하고 보던 책들을 모두 모아 불사른 뒤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산사를 떠나 전국 각지를 유랑하였다. 부여 무량사에서 59세에 병사하여 다비식을 거행하여 현재도 부도로 남아있다.

사육신이 처형되던 날 밤 온 장안 사람들이 세조의 전제에 벌벌 떨고 있을 때에 거리에서 거열형에 처해진 사육신의 시신을 바랑에 주섬주섬 담아다가 노량진 한강가에 임시 매장한 사람이 바로 김시습이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이후 그는 관서지방을 유람하며 역사의 고적을 찾고 산천을 보면서 많은 시를 지었다. 이는 <매월당집><탕유관서록(宕遊關西錄>으로 남아 있다.

김시습이 처음에는 이곳 수락사 입구 청풍정에 숨었다가 나중에 폭천정사(瀑泉精舍)로 옮겨 은둔했다고 한다. 박세당 사당터 앞으로 흐르는 개울 하천변 암반에는 박세당의 친필로 새겨진 암각문이 있다.

암각문은 궤산정 앞의 자연 주초석에 石泉洞’, ‘西溪幽居’, ‘聚勝臺라고 새겨져있다. 개울을 따라서 10여미터 올라가면 그곳에도 石泉洞이라는 암각문이 또 새겨져 있다.

또한 동쪽으로 약 100미터 지점에 청풍정 유지가 있는데 이 앞을 흐르는 개울의 암반에도 水落洞天이란 암각문이 있다.
청풍정은 서계 박세당(朴世堂) 선생이 매월당 김시습을 추모하기 위하여 영당을 짓고 그 앞에 세운 서당으로 제자들과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정자 아래쪽 계곡 암면에는 수락동천(水落洞天)이라는 암각문이 남아있다. 이 글씨는 김시습의 친필을 남구만이 새긴 초서체 암각문이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로 유명한 남구만(16291711)은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초부리에 산소가 있다.

궤산정을 중심으로 뒤편에는 서계의 옛집이 있고 주위에는 그가 심었다는 오래된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들이 지금도 고택을 지키고 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