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의 땅이름-75)새말(新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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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의 땅이름-75)새말(新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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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1.2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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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윤 논설위원·신한대 중앙도서관장
의정부시 신곡동에 가면 새말(新村)이 있다. 현재 새말은 경기도청 제2청사 옆 새말초등학교 일대를 말한다.

<새말>은 원래 <새마을>이 음운, 축약되어 새말로 된 것이다. 새말이라는 지명은 <새말로> 도로명과 의정부 경전철 <새말역>명으로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새말은 조선시대 성종의 아들 경명군(景明君; 1489~1526) 의 후손들이 이곳에 와서 거주하면서 마을을 새로 개척하여 살았다하여 새마을-새말-신촌(新村)이라고 불렀다. 일설에는 1592(선조25) 경부터 전주 이씨 일가가 이곳에 낙양하여 마을을 개척하여 처음으로 살았다하여 새말이라고 불린다고도 한다. 새말은 바깥 새말과 안 새말로 나뉘며, 안 새말에서 바깥 새말로 넘어가는 고개를 새말고개라 한다.

경명군은 조선 전기의 왕자로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성지(誠之), 본명은 이침이다. 성종(成宗)의 아홉 번째 아들이다.

경명군은 단아하고 검소한 성품과 뛰어난 학문으로 명망이 높았다. 경명군은 중종(中宗)과의 관계가 매우 좋아서 종친부(宗親府), 종부시(宗簿寺), 사옹원(司饔院)의 도제조(都提調)를 겸하고 태조 이성계의 왕비였던 신의 왕후 한씨(韓氏)를 모신 사당 문소전(文昭殿)을 관장하였다. 도제조는 정1품의 관직으로 왕의 친족 중에서 임명되는 직책이다.

그러나 경명군은 1521(중종16)년 안처겸(安處謙;1486-1521) 등이 남곤(南袞), 심정(沈貞)의 제거를 도모하다가 오히려 남곤과 심정의 반격을 받아 역모를 획책하였다는 죄명으로 주살될 때 안처겸 등이 경명군 추대를 운위하였다 하여 이에 연루되었다. 비록, 무고함을 확신하는 중종의 비호로 처벌은 받지 않았지만, 두문불출하도록 강요되는 등 실의 속에서 주야로 과음하다가 죽었다.

경명군의 묘소는 의정부시 신곡동에 있는데 의정부시 향토유적 제11호이다. 봉분의 높이는 2.1m, 둘레는 17m이다. 묘소 주변에는 이수가 조각된 묘비와 상석, 향로석, 문인상, 망주석,장명등이 배치되었다. 묘비는 1527년 전후로 세워졌으며 높이는 1.28m, 폭은 53cm이다. 근처에는 경명군의 두 아들을 비롯해 후손들의 묘 13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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